미당 아우 90세 서정태 시인 "형님 칭찬 예순에 처음 들었지"
“할아버지, 제가 시창작 수업에서 C학점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시를 써야 할까요.”

“시는 스스로 위안을 받기 위해서,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써야지. 시는 쓰여야 쓰는 거지.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있어. 억지로 쓰려고 하지 말고 나오는 대로 써봐. 허허.”

할아버지 댁에 아들딸과 손주들이 찾아간 것 같았다. 전북 고창군 고향 땅에 두어 평 되는 초가집을 짓고 혼자 사는 미당(未堂) 서정주의 아우 우하(又下) 서정태 시인(90·사진). 27년 만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시와) 출간을 기념해 독자 40여명이 지난 13일 고창을 찾았다. 인터파크도서가 주최한 문학기행을 통해서다. 멀리까지 찾아온 이들이 반가웠는지 그는 오랜 시간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지난 2월 출간된《그냥 덮어둘 일이지》는 시집으로는 드물게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10위(4월 둘째주 예스24)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90년 인생의 통찰을 평화로운 낮잠 속 대화처럼 조곤조곤 들려주는 ‘느린 시’들이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는 것. 하지만 노(老)시인은 판매 부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많은 사람이 시집을 보고 있다”고 하자 그는 지나가듯 답했다. “많이 팔리긴, 요즘 누가 시를 보나. 손해만 안 보면 다행이지. 출판사 사장님한테 미안하니까….”

20대 중반부터 시를 쓰긴 했지만 이제야 두 번째 시집을 냈다. 평생을 ‘미당 동생’으로 불려 온 그다.

“형님에겐 칭찬을 예순 넘어서 처음 들어봤어. 그래도 속으론 항상 나를 챙겨줬지. 첫 시집 낼 때 ‘너 시집 낸다면서, 서문은 누가 쓰니’ 하고 물으시길래 김광규 시인에게 부탁할까 한다고 했더니, ‘에이, 내가 써주마. 너 시 참 좋더라’고 하시더라고. ‘에이, 좋기는 뭐 좋아요’ 하고 말았지. 살아계셨으면 이번 시집도 칭찬해주셨을 텐데.”

사실 그가 문학을 배운 것도 미당으로부터였다. 그가 11세 때 19세였던 미당이 하굣길에 항상 동화책을 갖다 줬다. 15세였던 누나 한 명과 함께 ‘형제시첩’이라는 잡지도 여러 번 만들었다.

그가 기거하는 초가집에서는 미당 내외와 부모님의 묘가 한눈에 보인다. 그는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나도 마찬가지”라며 “즐기면서 시묘살이하는 셈”이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형님 묘소 보면서 말을 걸어. 대화를 많이 나누지. 내일 아침에는 이렇게 말을 걸려고 해. ‘어제 사람들과 형님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들으셨소?’”

그는 독자들을 위해 시를 낭송했다. “그냥 덮어둘 일이지/봄바람에 옷소매 스치듯/지난 잠시의 눈맞춤/그것도 허물이라고 흉을 보나//대숲이 사운거리고/나뭇잎이 살랑거리며/온갖/새들이 재잘거리네” 평화로운 오후였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