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정화 중기청장 "창업자에 돈주기 보단 인프라 구축 힘쓸 것"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사진)은 “과도한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창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쪽으로 창업지원정책의 큰 틀을 과감하게 바꾸겠다”고 말했다.

한 청장은 ‘창조경제벤처포럼’ 발대식이 열린 지난 10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빌딩에서 기자와 만나 “정부가 벤처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예비 창업자들에게 직접 예산을 주면 자칫 능력 있는 창업자들의 창업 의지를 떨어뜨리고 정부 자금만 바라게 만들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창조경제벤처포럼은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5개 민간 벤처단체가 출범시킨 연구모임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어떻게 보나.

“정책은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의도와 결과 간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공직 업무의 핵심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막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는데 효과가 있었나. 정책 목표는 그럴 듯했지만 효과는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한국벤처투자빌딩에서 국장들과 몇 시간 토론을 했다. 국장들에게 ‘당신들이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채근했다. 좋은 정책을 만들었지만 수혜 당사자들이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 삶이 나아졌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청장이 거론한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하도급법)는 2011년 3월 시행됐으나 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 또는 제소된 건이 없다. 정부는 그해 7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가격조정신청권을 줬으나 신청 건수는 단 한 건뿐이었다. 현실에 맞지 않은 책상물림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하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소기업 중심 경제 전환) 의지가 강하고 다른 부처 정책담당자들도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중기청의 위상도 강화됐다. 타이밍도 아주 좋다. 그러나 시간을 끌면 곤란하다. 상반기 중에 기본적인 정책방향에 대한 세팅을 끝내고 힘있게 정책들을 밀어붙일 생각이다.”

▷창조경제 타령이란 불만도 있다.

“정부 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장·차관 인사가 끝난 지 채 한 달도 안됐다. 나도 이제 임명장을 받은 지 20일 됐다. 서민생활과 직결돼 있는 골목상권 살리기 등 140개 국정과제를 정책으로 가다듬고 현장에 시행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현장에 계신 분들은 어려운 상황 때문에 창조경제 문제가 피부에 안 와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소기업 어떻게 지원하나.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강조하던 게 시장과 정책의 균형이다. 어떤 정책이든지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게 도움을 줘야지, 너무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된다. 정책이 너무 세면 시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창업정책이 그런 거다. 직접 창업자에게 돈을 주기보다는 창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 창업 교육 인프라를 강화하고 개발한 기술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시장과 기업 인수·합병(M&A)시장을 활성화하는 것 등이다. 창업자에게 직접 돈을 주면 기술개발보다는 자금을 타먹기 위해 줄을 서는 현상이 벌어진다. 제도혁신이 중요하다. 제도혁신의 핵심은 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쪽으로 창업지원 방향을 과감하게 바꾸려 한다.”

▷준비 중인 정책이 많다고 들었다.

“내가 비중을 두는 것은 ‘어려워진 기업들이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재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책이다. 창업이 많으면 그만큼 실패도 많아진다. 이때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고 시장을 빠져나가게 해줘야 재진입이 가능하다. 연대보증제도 개선 같은 기존 방안을 포함해 좀 더 큰 틀에서 정책을 만들고 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