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출신 20세 청년이 미국 유명 음대 2곳에 동시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일부를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아동복지 시설인 부산 소년의집에서 자란 박명훈(20)씨는 6살 때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접했다.

그는 이곳 복지시설의 관현악단에서 성가대 반주활동을 하며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꿈을 키웠다.

2009년 소년의집 관현악단이 미국 카네기홀 초청을 받아 공연을 펼쳤다.

'꿈의 무대' 공연을 계기로 명훈씨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고아인 명훈씨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성인이 되면 소년의 집을 나가 자립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생계가 더욱 급했던 것.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꿈과 생계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명훈씨는 19살이 되던 해 소년의 집을 나와 미국행을 택했다.

평소 '엄마'라고 부르던 수녀님께도 알리지 않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건너간 미국에서 그는 기적처럼 1년 만에 영어공부를 끝내고 미국 명문음대인 NEC(뉴잉글랜드음악원)와 맨허튼 음대 두 곳에 지원, 당당히 합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명훈씨의 합격 뒤에는 든든한 멘토가 돼 준 김규(24)씨의 후원이 컸다.

그가 NEC대학의 음대생이던 김규씨와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여름.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을 찾았다가 부산 소년의 집에서 무료 음악강사 봉사활동을 하게 된 김규씨는 명훈씨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다.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떨리게 하는 뭔가가 명훈씨에게 있음을 김씨는 눈여겨 본 것이다.

재능과 열정이 있음에도 현실에 부딪혀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는 명훈씨에게 김씨는 미국행을 제안했다.

고아출신인 명훈씨가 편견 없이 음악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미국행 제안을 받은 지 6개월쯤 됐을때 명훈씨는 '언제든 찾아오라'는 김규씨의 제안을 믿고 덜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규씨는 자신을 믿고 찾아온 명훈씨를 위해 자신의 방을 기꺼이 내주고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명훈씨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엄하게 질책하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바이올린 연습도 도왔다.

명훈씨는 끝내 NEC 등 두 곳에 당당히 합격,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와준 김규씨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명훈씨가 대학에서 장학금 일부만을 지원받기때문에 등록금 문제로 학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놓인 것이다.

명훈씨의 아까운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뜻있는 후원자를 김규씨는 애타게 찾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rea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