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에 대해 국민은 물론 전문가들도 혼란스러워 하는 요즘이다. 신정부 출범 한 달이 넘은 이제는 창조경제의 정체성이 가시화될 때가 아닌가 한다.

창조경제는 대략 과학기술과 문화의 융합, 정보기술(IT) 융합, 벤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으로 설명되고 있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스라엘을 들고 있다. 이런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이전 혁신경제와의 차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마이클 포터가 주창한 혁신경제의 정의 안에는 이런 내용들이 당연히 포함돼 있다. 혹자는 혁신경제는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창조경제는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19세기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파괴적 혁신을 주창한 바 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창조경제란 이런 것이다’ 하는 내용들은 기존의 혁신경제를 포장만 바꾼 레토릭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팽배해 있다.

창조경제란 용어는 현 정부가 세계 최초로 쓴 용어도 아니다. 1990년 일본 노무라연구소에서 창조사회란 보고서를 냈고, 1997년 제기된 영국의 창조경제 논의는 2001년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론으로 이어졌다.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개발과 같은 문화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의 국가발전 전략이었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이라는 책에서 미래 창조도시를 언급하고 있다. 즉, 창조경제라는 용어는 우리가 처음 쓴 용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라연구소나 호킨스, 플로리다가 사용한 창조경제의 그릇에 대한민국의 창조경제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대표적으로 호킨스의 창조경제는 창조성을 구현하기 쉬운 문화산업에 집중돼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국에서는 해리 포터와 같이 세계적인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고, 웨스트엔드의 뮤지컬들이 영화화돼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미래 전략을 호킨스의 창조경제 정의에 맞추기에는 한국의 진화단계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첫째는 작금에 논의되는 창조경제의 설명은 이미 기존 혁신경제의 재포장이고, 둘째 창조경제란 용어 자체는 이미 문화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20년 전부터 사용돼 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2009년 모든 산업이 문화산업화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창조경제연구회를 만들고 창조경제를 ‘혁신에서 창조성이 실천력보다 중요해지는 경제’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혁신에서 창조성의 실천과정을 극적으로 쉽게 만드는 세 가지 거대한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첫째는 기술을 만드는 기술인 메타기술의 등장이다.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쉽게 만들고, 반도체 설계가 쉬워지고, 건축 설계가 단순화된다. 둘째, 혁신생태계의 등장이다. 레고 조각을 맞추듯 기존에 있는 조각들을 활용하고 내가 새로이 만든 아이디어 조각을 끼워 넣어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출하하는 것이다. 내부 단독 개발이 생태계 중심의 개방 혁신으로 변화한 것이다. 셋째로 개방 플랫폼의 등장은 시장 진입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춰주고 있다. 유튜브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뜨고 애니팡 게임이 카카오톡에서 확산됐듯이, 개방시장 플랫폼은 창조적 혁신 확산의 고속도로가 됐다. 거대한 시장 플랫폼 위에서 다양한 혁신들이 급속히 퍼져 나가는 것이 창조경제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창조경제의 구현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해진다. 첫째가 메타기술의 개발 지원이다. 둘째는 다양한 혁신생태계 형성을 거쳐 궁극적으로 창조·혁신 시장을 육성하는 것이다. 셋째는 개방 플랫폼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가장 거대한 국가 플랫폼의 개방이 정부3.0 과제이다.

이런 세 가지 핵심 전략 구현을 위해 대기업의 효율과 중소벤처의 혁신을 선순환시키는 공정거래가 필요하다. 바로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의 관계 설정이다. 국민과 정부가 융합하는 정부3.0은 미래지향점이 된다. 즉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정부3.0은 삼위일체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이민화 < 벤처기업協 명예회장, KAIST 교수 mhleesr@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