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는 사진이 강의실 화면에 올라왔다. 지난해 9월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 광릉수목원의 모습이다.

“태풍이 왔을 때 전국 나무들이 다 이렇게 넘어졌을까요? 아닙니다. 광릉수목원 나무들이 유난히 많이 뽑혔습니다. 왜일까요. 광릉수목원은 수도권에서 가장 토양이 비옥한 곳입니다. 영양분이 많으니 나무들이 뿌리를 대충 내립니다. 그래서 바람이 좀 불면 뿌리째 뽑히는 겁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나무들은 양분이 없어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고난과 역경에 강한 것이죠.”

연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봄학기 두 번째 시간. ‘회복탄력성과 소통 능력의 리더십’ 강의를 맡은 김주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이렇게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회복탄력성이란 고난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실패만이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를 피하는 것은 성공을 피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요? 아닙니다. ‘오직 실패만이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실패만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보지 않은 사람은 높은 곳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성공의 모형은 그렇게 항상 올라갔다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실패한 뒤에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통계적으로 한 번 떨어지면 3분의 1 정도만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세상에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회복탄력성이다.

“얇고 넓은 널빤지가 있습니다. 강풍이 불면 부러지겠죠. 가운데 구멍을 뚫고 네 귀퉁이에 끈을 연결해 봅시다. 바람이 불면 연이 돼서 하늘로 올라가죠. 여기서 핵심은 강풍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마주치는 역경이 아니라 구멍을 뚫고 대비하는 내 자세와 마음가짐입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3분의 1은 성공한다”

김 교수는 이어 미국 하와이주 카우아이섬에서 1955년부터 40여년간 진행된 에이미 워너 교수의 연구를 소개했다. 범죄율이 높고 마약·알코올 중독자도 많은 마을이었다. 1955년에 태어난 신생아 833명 전원의 인생을 추적했다. 어떤 요인이 사람을 범죄자, 중독자로 만드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1970년대 초반 피험자들이 10대가 되자 실험 대상을 그중에서도 고(高)위험군에 속하는 200여명으로 추렸다.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왔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고위험군 안에서 나온 겁니다. 전교에서 1등하는 학생도 있고, 학생 회장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200여명 가운데 72명이 평균 이상의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애초에 무엇이 사람을 실패하게 만드느냐를 찾는 연구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연구 주제를 이 72명이 어떻게 성공했나로 바꾸게 됩니다. 이들의 인생 자료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본 뒤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회복탄력성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72명에겐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유아 시절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72명 외의 사람들은 버팀목이 돼주는 어른이 없었다. 사랑을 받은 경험이 회복탄력성의 절대적 전제 조건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제 와서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올리라는 얘긴가’ 하는 생각이 드시죠?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여러분은 모두 3세 이전에 충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셔야 한다는 걸 잘 기억하시면 됩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 중에 이걸 잘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한답시고 공부해라, 학원 가라 조건을 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 공부 못하면 엄마가 싫어할 텐데…’라는 생각에 불안해지고, 불행해집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길 바란다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세요.”

#“회복탄력성과 소통 능력은 통한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며, 이를 지탱하는 두 축은 사랑과 존중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도 사람의 능력이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이 잘나면 존경한다고 생각하죠. 아닙니다. 누군가를 존중하는 건 나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내 자신의 잘못된 점부터 고치라는 식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감도 없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단점부터 찾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랑하고 존중하는 능력이 바로 소통하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성공하게 만드는 회복탄력성이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며, 곧 이것이 소통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이 결코 소통이 아니라는 얘기다. 말을 잘하지 못해도 내 뜻이 잘 전달되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장이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면 메시지 자체는 전달되지만, 효과가 나오지 않는 것도 소통이 되지 않아서란 설명이다.

“사장이 존중받지도 못하고 직원을 존중하지도 못하니까 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카사노바는 5분 만에 여자의 호감과 신뢰를 얻죠? 이런 게 소통입니다. 인간관계에서 호감과 신뢰, 사랑과 존중을 높이는 것이 소통입니다.”

#“배우자부터 존중 하라”

결혼이 잘 유지되려면 꼭 필요한 조건 역시 사랑과 존중이다. 존 고트먼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이혼 예측 방정식’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35년간 3000쌍의 부부를 연구하며 그들의 갈등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나온 연구 결과다. 2분 동안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것만 지켜보면 이혼 예측 방정식을 통해 정확하게 이혼 확률을 알려준다고 한다. 방정식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표정’이다.

“결혼 생활에서 현실적으로 사랑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 많이 확인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뇌에서 분비되는 사랑을 느끼는 호르몬인 도파민은 최대 30개월만 나온다고 합니다. 5년 이상 잘 유지하는 부부들은 뇌의 편안함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흔히 ‘사랑보다 정(情)’이라고 말하는 단계죠. 결국 결혼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결정하는 것은 존중이라는 얘기입니다.”

김 교수가 갑자기 부부간의 존중을 강조한 것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존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존중하기 어려운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는 능력을 키우기 가장 좋은 상대가 배우자라는 것이다.

“부부간에 존중하게 되면 부모자식 간 존중은 쉬워집니다. 그 다음은 친구고, 직장 동료이며, 고객이 됩니다. 그리고 남을 존중하는 사람은 존중도 받습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많은데, 장성한 자녀로부터 존경받는 부모들의 특징은 어려서부터 자녀를 존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고, 존경하면 존경을 받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본다는 것입니다.”

#“소통능력은 모든 일의 기초 체력”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인간관계 안에서 이뤄집니다. 소통 능력이란 그 인간관계를 잘 다지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소통은 모든 일의 기초 체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 능력을 높인다는 것은 호감과 신뢰를 얻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같은 말로는 설득력이라고 하죠. 사장은 직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어야 하고, 기업은 고객으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모든 광고는 소비자가 그 기업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감과 신뢰는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면 호감을 얻긴 쉽지만,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이들은 신뢰에 중점을 두는데, 그만큼 부하 직원들로부터 호감을 사긴 어렵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호감을 얻으려면 겸손해야 하고, 신뢰를 얻으려면 약간의 과시가 필요합니다. 이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초반에는 약간 잘난 척을 해서 신뢰를 높이되 친하게 되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 호감을 높이고 신뢰를 쌓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공감하는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긍정적인 정서 속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감정이 생기고, 소통 능력이 올라갑니다. 결국 업무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죠. 공감할 때는 긍정과 부정을 3 대 1 비율로 맞춰줘야 합니다. 많은 조직이 부정적이기만 하기 때문에 긍정의 문화를 심어야 하죠. 그런데 긍정적이기만 한 조직도 발전하진 않습니다. 때문에 3 대 1의 비율이 중요합니다.”

김주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