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교육동에선 중공업사관학교 생도 60여명이 한국사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올 2월 고교를 졸업한 새내기 사원. ‘생도’로 불리는 학생들이 회색 조선소 유니폼을 입은 것만 빼면 일반 대학 강의실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생도 4명이 제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강의를 하던 손숙경 동아대 사학과 강사는 “‘왜 일어섰느냐’고 물어보니 ‘졸음이 와 서서 수업을 받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개개인이 사회인으로서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수업태도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공업사관학교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설립한 고졸신입사원 교육과정. 올 2월 1기생 103명이 수료한 데 이어 지난 2일부터 2기 생도들이 회사원이자 대학생으로서 프로 해양조선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선박 설계 기술자, 경영 관리 감독자 등을 꿈꾸는 이들이 역사 수업을 받는 이유에 대해 ‘교감 선생님’ 격인 이상엽 인사팀 부장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시민이 돼야 훌륭한 해양조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도들은 올 한 해 동안 공학수학, 조선해양공학, 설계 실습 등 전공과목과 한국사, 세계사 등 교양 수업을 각각 10과목씩 총 59학점을 따야 한다. 작년 10월에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사내대학 인가를 받았다. 1년 과정을 마친 뒤 야간에 2학기 더 수업을 들으면 전문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생도들은 방과후 바이올린, 기타, 색소폰 연주 수업도 받는다. 해외 선주들을 상대해야 하는 ‘글로벌 교양인’이 되기 위해선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알아야 해서다. 매주 금요일에는 ‘테마교육’이란 문사철(문학·사학·철학) 수업을 듣는다. 사회 저명 인사를 초청한 강연도 연다. 모든 수업은 대학교수, 강사를 초빙하거나 현장 관리자급이 진행한다.

생도들은 ‘학생’ 신분이지만 채용 전형에 합격한 직원이기도 하다. 교육기간 중 약 25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사내 독신자 기숙사 또는 사원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내년 2월 교육이 끝나면 여생도들은 바로 실무에 투입되고 남생도들은 병역 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한다. 입사 7년차부터는 대졸 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생도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은 ‘협동심’이다. 배 한 척을 짓기 위해선 수천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과목을 잘하는 생도들이 자체적으로 반을 개설, 서로 공부를 도와주는 피어티칭(peer teaching)을 한다. 한 생도가 단체 카톡방에 ‘내 회계 강의 들을 사람’이라고 올리면 원하는 생도들이 수업을 받는 식이다.

취업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 2기 모집 경쟁률은 25 대 1에 달했다. 합격자 중에는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 출신 1명과 외국어고 출신 9명도 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2월 수료 후 실무에 투입된 1기 생도들에 대해 실무 부서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거제=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