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 박정희 前 대통령… "정치적 공격 이제 그만"
과거 연연 않고 현실 인식해 '자랑스런 대학' 재도약
직선제방식 폐지 이후 첫 총장 취임… "어깨 무겁다"

[2013 대학총장 인터뷰 (5)] 노석균 영남대 총장, '제2한강의 기적' 이끌 인재 길러내겠다
<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경북 경산에 있는 영남대 총장실에 들어서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눈에 띈다. 옆엔 '민족중흥의 동량'이란 문구의 족자가 걸려 있다. 학교 설립자인 박 전 대통령의 흔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설립자 유족 자격으로 재단 이사를 지냈다. 영남대가 지난해 대선 기간 중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배경이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합쳐 탄생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강탈'이 아닙니다. 내부에서 먼저 박 전 대통령에게 상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두 학교의 재정 상황이 안 좋았어요. 학교가 쓰러져선 안 된다고 판단해 합병, 정상화시킨 거죠. 어려운 학교를 살려낸 겁니다. 더 이상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지난달 1일 취임한 노석균 영남대 신임 총장(58·사진)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논점을 직설적으로 설명했다. 스스로 '문제를 피해가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노 총장은 "영남대는 50여년 전 선진조국 비전으로 설립된 자랑스러운 대학" 이라며 "우리 학교만의 정체성을 살려 앞으로 50년 '제2한강의 기적'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기 동안 최우선 목표로 영남대의 위상 회복을 꼽았다. "그 첫걸음은 현실 인식부터"라고 힘줘 말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 새로 뛰겠다는 것. 노 총장은 "위상을 되찾으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며 "총장인 저부터 자존심 버리고 모든 문제에 앞장서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약 20년간 직선제로 치러진 영남대의 총장 선출 방식이 바뀐 이후 첫 총장이다. 내부 파벌과 인기 영합 정책 등 직선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시도다. "새로운 방식으로 뽑힌 첫 총장이라 어깨가 무겁다"는 노 총장을 만나 지역 명문대의 고민과 발전 방안을 들어봤다.

[2013 대학총장 인터뷰 (5)] 노석균 영남대 총장, '제2한강의 기적' 이끌 인재 길러내겠다
- 총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대학 운영 목표를 어떻게 잡으셨습니까.


"영남대의 위상을 회복하겠습니다. 학교에도, 동문에게도 가장 중요한 운영 목표입니다. 과거 '한강 이남 최고 대학'이란 자부심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남아있죠. 하지만 객관적 지표는 그 수준에 못 미칩니다. 학교의 종합적 역량이 적어도 수도권 주요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평가해도 전국10위권 대학' 수준으로 만들 겁니다."

- 비전이 뚜렷하네요.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막연히 과거 위상 회복한다고 말만 하면 안 되죠. 앞서 20여년간 임시이사 체제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도 총장들은 열심히 뛰었어요. 하지만 재단의 일관된 방향성이 없다 보니 지속적 발전이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대학 정체성과 교육의 일관성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거기에 초점을 맞춰 학교 운영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겁니다."

- 위상 강화를 위한 당면 과제는.

"우선 우리 스스로 현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꾸 옛날의 영광을 얘기할 할 필요가 없어요.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는 게 중요하죠. 또 지방대 전체의 문제도 큽니다. 우수 학생인데도 지방대 출신이라 취업에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정책 입안에 지방대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정부나 서울 기업에 가서 끊임없이 알려야 합니다.

정부에 요청하는 건 딱 하나, 경쟁이 가능하도록 지방 교육 인프라를 일정 수준 지원해 달라는 겁니다. 지방이니 특혜 달라는 게 아니에요. 미국은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지만 사정에 따라 주립대에 진학하기도 해요. 어느 대학에 가든 열심히만 하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지방에서도 인식을 바꿔야죠. 지방대가 좋아야 그 지역이 발전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이 올라갑니다."

- 영남대의 정체성은 뭡니까.
"설립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떼어놓을 수 없어요. '민족 중흥의 동량'이란 저 액자 보이시죠? 1967년이니까, 산업화 역군을 길러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남대가 배출한 인재들이 지난 50년간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동안 뚜렷한 족적을 남겼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학교를 '자랑스러운 대학'이라고 얘기합니다.

그게 가장 큰 자랑이자 부담이죠. 취임과 함께 내건 '미래를 만드는 대학'이란 비전도 그 연장선상에 있어요. 지난 50년 전통을 이어 앞으로 반세기의 또 다른 미래를 어떻게 할 거냐, 그 문제의식이 녹아 있습니다. 그동안 지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으로 기여해 왔어요. 각계에서 활동하는 20만 동문의 모교에 대한 애정도 굉장히 강합니다."

- 기업 CEO 중에도 영남대 출신이 많죠.
"국내 사학 가운데 동문 규모가 최대 수준입니다. 프라이드도 높아 동문들이 학교 위상 회복을 얘기하고 구체적 노력을 주문합니다. 저는 문제를 안 피하는 편입니다. 어떻게든 부딪쳐 해결하는 스타일이에요. 현재 학교의 어려움을 풀고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앞장 설 겁니다. 여러 경영 비전과 이론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게 가장 중요하죠."

- 구체적으로 동문을 활용할 복안이 있습니까.

"재정 확충이나 졸업생의 사회 진출에 동문 인프라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학교의 자구 노력이 먼저입니다. 부족한 점 고치고 줄일 건 줄여서 내실을 다져야 해요. 동문들이 도와줄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는 건 우리 몫이죠. 동창이니까 무조건 도와 달라, 이렇게는 못합니다. 상호 이해에 바탕한 관계를 맺고, 그 뒤 세부 펀드레이징 계획 등을 제시할 겁니다."

-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학교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는데요.

"박근혜 대통령도 곤욕을 치렀고 우리 대학도 힘들었습니다. 의혹의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이 학교를 강탈했다, 장물이다, 이런 얘기거든요. 유족인 박 대통령 역시 무슨 권리로 이사를 추천했냐는 거죠.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기록이 말해줍니다.

당시에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사정이 안 좋았어요. 하다못해 소속 교수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상의했고, 합법적 절차를 밟아 합병해 지금의 영남대가 됐습니다. 비록 재산을 내놓진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어려운 학교를 살려내 정상화시켜 설립자가 된 겁니다. 박 대통령 역시 사립학교법이 정한 대로 '종전 이사' 자격으로 이사를 추천한 것일 뿐이에요."

-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의 격려 메시지는 없었습니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웃음) 저희는 설립자 유족이자 재단 이사였던 분이 대통령이 돼 국가에 봉사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오히려 그런 관계 때문에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죠. 당장 학교가 자료와 전통을 갖춘 새마을운동·정책을 특성화 할 건데 정치적 공격을 받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교육기관인 학교가 더 이상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 새 정부에 바라는 지방대 지원 정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사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 자체가 너무 적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입니다. 잘 생각해봐야 해요. '반값 등록금' 얘기가 나오는데 그러면 결국 양극화 됩니다. 서울 유명 대학, 재벌 대학은 이미 우수 교수·학생·자본, 모든 걸 갖고 있어요. 이런 조건에서 제한을 가하면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중소기업을 키워주듯 지방대를 지원할 필요가 있어요. 특혜가 아니라 당연한 방향입니다."

- 학교도 특화된 부분에 투자해 차별화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인문·사회계에선 한국학이나 새마을정책 관련 분야, 이공계에선 그린에너지·바이오와 LED 분야를 특성화시킬 계획입니다. 학교 전체적으로 같은 법인의 영남이공대학과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할 겁니다.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사회 요구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류에 맞게 바꿔야죠. 줄일 건 줄이고 키워야 할 분야는 특화시킬 계획입니다."

- 전공 통폐합 같은 대학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힘들겠지만 해야죠.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학교의 방향성도 약간 조정할 생각이에요.교수들이 연구 쪽에 치우쳐 있는데 앞으로 학생교육 잘하는 교수를 대우해 주는 풍토를 조성하려고 해요. 강의를 많이, 열심히 하면 연구 실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기여도를 인정해주는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 생각입니다."

[2013 대학총장 인터뷰 (5)] 노석균 영남대 총장, '제2한강의 기적' 이끌 인재 길러내겠다
- 재단 정상화 이후 첫 직선제 총장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의미가 큽니다. 제가 처음 학교에 교수로 부임했을 때가 첫 번째 직선제 총장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이 많았어요. 파벌이 갈리고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직선제 총장들과 차별화 된 장점으로 구성원에 확신을 줘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위치에 있어요."

- 재단과 학교 양쪽을 경험하섰는데요.

"아무래도 한쪽에 있는 것과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죠. 어떤 사립대든 임시이사 체제 재단의 학교가 발전한 곳은 없습니다. 법인에 있으면서 학교의 역사와 설립 취지의 중요성을 알게 됐죠. 구성원들이 일관된 학교의 가치를 공유할 때, 거기서 영남대만의 교육이 나오고 독특한 파워가 생깁니다. '정체성 확립'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 새 정부가 '창조경제'를 강조하는데 공학자 입장에서 어떻게 봅니까.

"제가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데, 과학기술인들은 굉장히 좋게 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대학 실험실의 기초연구 결과물을 기업이 가져가 곧바로 사업화하는 수준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창조경제의 요체가 바로 과학기술 근간입니다. 지금 시대에 그렇게 가는 게 맞죠."

- 수험생, 학부모에게 학교 자랑 좀 해주세요.

"영남대가 위치한 곳이 신라 시대 화랑들이 훈련하던 압량벌입니다. 화랑정신과 민족 중흥의 동량이란 정신을 갖고 설립됐다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점을 알리고, 그런 책임감을 느끼라고 매번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환경에서 학생을 공부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기숙사를 비롯한 교육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어요. 저는 '학생교육을 위해선 그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 최근 학교 앞마당까지 지하철이 연결됐습니다.

"지난해 11월1일 자로 대구 지하철이 학교 앞까지 연장 개통됐어요. 큰 변화입니다. 학생들이 물리적, 심리적으로 학교와 가까워졌어요. 전국에서도 유명한 대구 수성학군 유치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소비자들의 대학 선택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그간 '영남대역'을 위해 굉장히 열심히 뛰었어요. (웃음) 여러 조짐으로 학교가 융성할 분위기를 탔습니다."

◆ 노석균 총장은…

경북 예천 출생.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과실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영남대 연구처장·교수회 의장,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상화추진위원장·기획조정실장 등 대학과 재단의 보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달 1일 영남대 제14대 총장으로 4년 임기를 시작했다.

경산=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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