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일본 샤프와 ‘한·일 전자동맹’을 구축한다. 소니와의 합작을 청산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일본 경쟁 기업과 손을 잡았다.

삼성은 샤프가 강점을 갖고 있는 대형 TV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10세대 액정표시장치(LCD) 라인을 보유한 샤프에 출자, 수조원을 들여 자체 10세대 라인을 짓지 않고도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삼성-샤프 동맹을 놓고 여러 관측이 나온다. 대만 훙하이, 미국 퀄컴과 애플 등 샤프와 거래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견제가 가능해졌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일본 전자업계 재편 과정에서 삼성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한마디로 삼성이 ‘꽃놀이패’를 쥐게 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973년 세계 최초로 LCD를 개발한 샤프와 삼성은 TV 업계의 오랜 라이벌이었다. 샤프가 어려워진 결정적 이유도 삼성 LG를 이기려고 가장 큰 TV를 만들 수 있는 10세대(가로·세로 2880×3130㎜) 공장에 너무 서둘러 투자한 탓이다.

삼성전자가 샤프에 출자를 결심한 이유는 ‘60인치 이상 대형 TV 패널의 안정적 확보’다. 샤프가 1조엔(약 12조원) 이상을 들여 완공한 10세대 공장은 가동률만 개선되면 대형 패널을 가장 싸게 공급할 수 있다. 샤프는 지난해 분사시킨 10세대 공장, 사카이디스플레이프로덕트(SDP)에서 60~110인치 패널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8세대(2200×2500㎜) 라인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공급할 수 있는 대형 패널이 55, 65, 75, 85인치 등에 그친다. 한 판의 큰 유리를 어떻게 잘라 버리는 부분을 줄이느냐에 따라 패널 값이 좌우돼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샤프의 60인치 패널을 써왔고, 현재 TV 패널 수요량의 10% 이상을 샤프에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60인치 이상 TV 시장은 서서히 만개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010년 TV 시장의 2.2%에 불과했던 60인치 이상 시장은 2015년 9.8%로 커진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담당 사장은 “아직 자체 10세대 공장을 세우기엔 모자라는 수준이지만 점점 더 많은 대형 패널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돈이 급한 샤프에 급전을 지원해주고 향후 확실한 공급을 약속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샤프도 ‘글로벌 TV시장 1위’인 삼성전자란 확실한 발주처를 확보하게 됐다. 대형 TV 시장이 만개하기도 전에 너무 서둘러 투자하는 바람에 막대한 적자를 내온 샤프로서도 고대하던 제휴다. 샤프는 소니와 제휴했으나 제 몸 챙기기에 급급했던 소니가 1년 만에 제휴를 청산한 뒤 오랜 기간 파트너를 찾아왔다. 지난해 3월 대만 훙하이정밀공업에서 660억엔 출자를 약속받았지만 출자 조건 등을 둘러싸고 협상이 교착된 상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샤프가 삼성에 제품 공급을 늘릴 경우 애플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잘못된 추측”이라고 잘라말했다. 애플을 압박하려면 삼성은 애플이 사다 쓰는 중소형 패널을 샤프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삼성전자가 쓰는 중소형 패널은 대부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다. 이번 제휴는 삼성전자 내 TV를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가 주도한 데다 출자 규모도 샤프의 중대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엔 너무 작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는 협력관계 강화 목적의 투자인 만큼 샤프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다만 샤프의 경영이 어려운 만큼 향후 추가 출자할 수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제휴는 장기간 라이벌 관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새로운 재편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