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간 진행된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이 ‘절반의 판결’로 일단락을 맺었다. 미국 법원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전에서 14개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확정했지만 나머지 14개 제품은 새 재판을 열 것을 명령했다. 새 재판은 두 회사의 항소심이 끝난 뒤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일단 1심 판결에서 ‘삼성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점은 인정됐지만 통상 배심원단의 평결이 그대로 판결로 이어지는 관행을 깨고 다시 소명할 기회가 주어진 만큼 삼성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절반의 판결

루시 고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지난 1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 1심 판결에서 “갤럭시S 등 삼성전자의 14개 제품에 대한 애플의 특허 침해를 인정한다”며 “14개 제품 배상액은 5억9950만달러(약 6500억원)로 산정한다”고 판시했다. 동일 제품에 대한 배심원 평결 금액과 같은 액수다. 지난해 8월 이 소송을 맡은 배심원들은 “28개 제품에 대해 고의적으로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삼성전자는 10억50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었다.

하지만 고 판사는 나머지 4억5000만여달러 부분에 대해선 다시 재판을 연 뒤 정확한 배상액을 산정하라고 판결했다. 재심 명령이 내려진 제품은 갤럭시 프리베일, 젬, 인덜지, 인퓨즈 4G, 갤럭시S2 AT&T, 캡티베이트, 콘티늄, 드로이드 차지, 에픽 4G, 이그지빗 4G, 갤럭시탭, 넥서스S 4G, 리플래니시, 트랜스폼 등 14종이다.

○“배심원 평결, 법적 근거 미약”

고 판사가 한꺼번에 손해배상액을 판결하지 못하고 일부 제품에 대해 새 재판을 열겠다고 한 것은 배심원의 배상액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판결문에서 “배상 평결 가운데 용인할 수 없는 법적 이론이 적용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적한 배심원의 첫 번째 실수는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이다. 배심원들은 28개 삼성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각 제품에 대한 삼성전자 수익 40%를 일괄 적용했다. 고 판사는 이에 대해 “실용 특허 위반 건에 대해선 특허 침해자의 수익을 배상액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겼다”고 말했다. 예컨대 갤럭시 프리베일에 대해 배심원들은 삼성전자 수익의 40%를 적용, 약 5800만달러의 배상금을 책정했지만 이 제품은 한 개의 실용 특허권만 침해했기 때문에 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특허 침해자가 상대편의 특허를 인지한 시점(notice date)’도 틀렸다고 판단했다. 배심원은 ‘삼성의 애플 특허 인지 시점’을 2010년 8월로 잡았지만 일부 특허는 2011년 4월과 6월에야 인지했다고 삼성은 주장하고 있다. 고 판사는 “이 때문에 배상금이 초과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 손해배상액 줄 듯

전문가들은 재판부가 재심사를 결정한 만큼 애초 평결액보다 총 손해배상액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특허법을 전공한 황성돈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새 배심원이 미국 특허청이 무효 판정을 내린 ‘핀치 투 줌’ 특허(특허번호 915) 등 디자인 특허를 제외한 실용 특허의 가치를 얼마로 매길지에 따라 14개 제품의 최종 배상액이 결정된다”며 “최종 액수는 평결액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손해배상액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디자인 특허와 실용 특허가 함께 걸려 있는 제품도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줄지는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삼성전자는 이날 “법원이 배심원이 결정한 배상액 중 일부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재판을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며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에 대해서도 검토 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 판사는 1차 소송에 대한 항소심이 끝난 뒤 다시 배심원을 꾸려 새 재판을 열 계획이다. 또 삼성전자와 애플은 각 사의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3와 아이폰5를 포함시켜 내년부터 2차 소송에서 맞붙을 예정이어서 두 회사의 특허소송은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