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모란시장 인근 8개 고교…유해업소 퇴출에 앞장서

"지긋지긋한 학교 앞 모텔촌…우리 손으로 해결"
학교를 에워싼 모텔촌과 윤락시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이 뭉쳤다.

지난 14일 오후. 수십 개 모텔과 단란주점, 윤락업소가 즐비한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주변 8개 고등학교 총학생회장과 부회장 1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등·하굣길마다 접하는 윤락업소와 야간 자습시간이면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어지럽혀지는 교실 등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나선 것.
학생들은 최근 방학과 동시에 학교를 에워싼 모텔촌과 윤락업소의 실태와 학생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고 UCC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윤락업소가 즐비한 거리를 통해 하교하는 모습 등 지난 한 달간 촬영한 내용을 수정, 재촬영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윤락업소의 붉은 네온사인이 하나둘씩 켜지고 업소들은 영업 준비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촬영을 위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평소 등·하굣길로 이용하던 윤락업소가 밀집한 골목을 서성였지만 이들을 제지하거나 보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녀학생 열댓 명이 함께 있었지만 붉은 거리에서 풍기는 위화감은 학생들에겐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성일고 학생회장 이병수(18)군은 "이곳은 이유없이 무섭다"며 "먼 길로 돌아가도 되지만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보니 지름길인 여길 지나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청소년문화혁신위원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더는 학교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한국외국인학교 전 학생회장 김예린(19) 양의 아이디어로 성남여고, 풍생고, 복정고, 성일고 등 모두 8개 학교가 뜻을 모았다.

첫 활동은 이 지역 5개 고등학교 학생 4천여 명을 대상으로 '학교주변 유해시설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조사 결과 학생 100명 중 26명꼴로 유흥업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거나 들어가고 싶다고 대답했으며 유흥업소 안을 들여다보려고 망원경을 가지고 등교한 적이 있다는 학생도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 위원회는 바빠졌다.

학생들은 설문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학교주변 유해업소 실태분석과 바람직한 청소년 문화 확립방안 연구'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작성하는가 하면 어른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다.

겨울방학부터 만들기 시작한 UCC가 완성되면 보고서와 함께 지자체와 교육지원청 등에 제출할 계획이다.

청소년문화혁식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예린 양은 "여러 모텔 중에 한 개만이라도 없어진다면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며 "궁극적으로 모텔촌이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남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young8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