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이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했지만 혁신 엔진이 멈췄다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물론 잡스 없는 애플은 과거의 애플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애플’로 거듭날 수도 있는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고, 현재의 반응이 지나치게 증폭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포브스는 “홈런타자라고 매 경기 홈런 치는 것은 아니다”고 썼다.

최근 애플 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애플이 아이폰 부품 발주량을 대폭 줄였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다. 이에 대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콘퍼런스콜에서 부품 공급사가 한둘이 아니라며 “그런 보도에 큰 비중을 둬선 안된다”고 말했다. 공급업체들의 물량을 늘리고 줄였을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포브스는 제품 수율 등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썼다.

실제로 작년 말엔 제품 수율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 애플은 작년 가을 유례없이 아이폰5, 아이패드4, 아이패드 미니, 맥북프로 레니타 15인치, PC 아이맥 21인치 등 신제품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이 가운데 아이폰5와 아이패드 미니, 아이맥 등은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인 바람에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워졌고, 공장 근로자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제품을 주문해도 보름 후에나 받기에 이르렀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애플이 디자인을 혁신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제품 수율에 문제가 생긴 것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쿡은 “특이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게 문제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크기를 줄이면 수율이 떨어져 연말성수기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예상 못한 게 잘못 아니냐는 얘기다.

애플을 좀 더 지켜보자고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쿡이 “믿기지 않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피터 오펜하이머 역시 “앞으로 나올 신제품들에 대해 정말로 확신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투자금융회사 제프레이의 진 먼스터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올해 새 아이폰, 큰 아이폰, 싼 아이폰과 HDTV급 애플TV를 내놓으면 주가가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사가 커진 만큼 1년 전에 비해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지난 5년간의 성장률을 향후 5년간 유지하면 매출이 1조2000억달러가 돼야 한다”며 “이전 성장률을 유지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작년 4분기 이익이 130억달러로 1년 전과 똑같다고 하지만 1년 전에는 14주였고 이번엔 13주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보유액도 애플에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애플 현금보유액은 작년 4분기 158억달러 늘어 1371억달러(약 147조원)에 달했다. 애플은 이 돈으로 경쟁력 강화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기업이나 기술을 과감하게 인수할 수 있다. 앱스토어와 아이튠즈를 중심으로 구축한 콘텐츠 생태계(에코시스템)와 400개를 돌파한 소매점(애플스토어)도 강점으로 꼽힌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