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총소득과 따로노는 가계소득…1991년 이후 GNI 6.5배 vs 가계소득 5.6배
‘2012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3159달러 사상 최고.’

서울 왕십리에서 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이성근 씨(46)는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이 수치를 보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가 집에 들고 가는 돈은 1년 전에 비해 20~30%가량 줄었다. 월세에다 식자재 값은 큰 폭으로 뛴 반면 매출은 거꾸로 줄어든 탓이다. 이씨는 “주변을 둘러봐도 돈벌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없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얘기인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가계소득 증가세 둔화

김영태 한국은행 경제통계팀장은 14일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가계소득과 국민총소득 증가율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1~2011년 중 한국의 가계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8.5%로 국민총소득 증가율(연평균 9.3%)을 밑돌았다. 반면 기업소득은 연평균 11.4%나 증가했다. 국민총소득은 가계와 기업, 정부가 노동이나 자본 등을 넣어 얻는 소득이다.

이에 따라 지난 21년간 국민총소득이 6.5배 불어나는 동안 가계소득은 5.6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계소득이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70.6%에서 2011년 61.6%로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나 주요국에 비해 큰 폭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OECD 평균은 이 기간 73.1%에서 69.0%로 4.1%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으며 독일(4.2%포인트), 미국(2.9%포인트) 등도 한국보다 축소폭이 작았다.

김 팀장은 “한국 국민총소득 중 가계로 분배되는 몫이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소득 대비 가계소득 배율도 2000년 4.2배였으나 2011년에는 2.6배로 줄었다.

○소득 둔화, 내수 부진 원인

보고서는 가계소득 둔화의 요인으로 △기업소득 증가를 밑돈 임금 상승률과 △자영업의 낮은 이익 증가 △순이자 소득 급감 등을 꼽았다.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과 임금 상승률 간 차이는 1990년대 1.1%포인트에 그쳤으나 2001~2011년에는 3.0%포인트로 확대됐다. 김 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성장을 주도한 수출 제조업에서 고용이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계소득에 속하는 자영업자 수익성도 크게 나빠졌다. 자영업자 영업이익 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10.2%에서 2001~2011년 1.5%로 하락했다. 이는 도소매 음식숙박 등 전통 서비스업에서 대형화 전문화 등으로 2000년대 들어 자영업자 1인당 영업이익 증가세가 둔화했기 때문이다.

가계 순이자소득도 줄었다. 2000년대 들어 가계가 받는 이자소득이 정체(연평균 0.6% 증가)한 반면 가계부채 급증으로 지급이자는 연평균 4.8%나 증가한 탓이다. 김 팀장은 “가계소득 증가세 둔화는 가계의 재정 건전성을 약화시키면서 소비 위축, 가계 저축률 하락, 투자 증가 둔화 등으로 이어져 내수 부진과 체감 경기 악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총생산에서 가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9.8%로 OECD 평균(68.5%)이나 일본(70.6%)에 비해 크게 낮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결국 일자리가 늘어야 가계부채나 자영업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국내에 재투자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