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과 사별한 지 3년 만에 재혼한 퇴계 이황(1501~1570)의 두 번째 부인은 안동 권씨였다. 퇴계의 고향인 안동 예안으로 귀양 온 권질의 딸이었다. 문제는 권씨의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는 것. 갑자사화, 기묘사화에 억울하게 연루돼 집안 어른들이 참화를 당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느 해 조부의 제삿날이었다. 일가친척이 큰집에 모여 제사상을 차리는데 상 위에서 배가 하나 떨어졌다. 막내 며느리가 재빨리 배를 집어 치마 속에 숨겼다. 이를 본 맏며느리가 동서를 크게 나무랐고, 웃음거리가 됐다. 잠시 후 이를 알게 된 퇴계는 부인을 따로 불러 배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 먹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자 퇴계는 치마 속에 감춘 배를 달라고 한 뒤 손수 배를 깎아 잘라 주었다.

《퇴계처럼》은 선생의 이런 인간적 면모에 깃든 섬김의 리더십에 주목한 책이다. 저자는 30여년의 경제관료 생활을 마치고 경북 안동에서 선비정신과 국학 진흥에 앞장서고 있는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67). 김 원장은 이 책에서 퇴계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받은 모친 춘천 박씨와 할머니 영양 김씨, 며느리와 손자며느리 등 여성들과의 이야기에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퇴계는 헤어진 흰 도포자락을 부인 권씨가 빨간 헝겊으로 기워주자 그대로 입고 다녔다. 대가 끊어진 처가의 제사를 모셨고, 군자의 도(道)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며 서로를 손님처럼 공경하라고 가르쳤다. 청상과부가 된 둘째 며느리는 개가하도록 했다. 서울에서 증손자를 연년생으로 출산한 손자며느리가 여종을 유모로 보내달라고 하자 “여종에게도 생후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백운동서원에서 글을 가르칠 땐 배순이라는 마을 대장장이가 뜰 아래에서 매일같이 경청하자 함께 공부하도록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

퇴계는 이렇듯 신분제도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풍조를 뛰어넘어 겸손과 배려, 희생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도학(道學)이란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다운 길을 찾아가는 것임을 보여줬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