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C.F. 해서웨이는 잘 알려지지도 않고 광고를 한 적도 없는 미국의 작은 셔츠회사였다. 그 회사는 첫 지면 광고를 무명의 HOBM이란 대행사에 맡겼다. 광고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오길비는 광고에 ‘파격적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멋진 중년 남자에게 검정 안대를 씌우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것은 상품 자체가 아니라 그 상품을 쓰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광고였다. ‘해서웨이 셔츠를 입은 사나이’란 카피를 단 이 광고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고 1주일도 안돼 이 셔츠의 재고가 바닥나버렸다.

《무조건 팔아라》는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의 삶과 광고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이다. ‘무조건 팔아라’는 그의 광고 철학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명언이다. 그는 “광고는 소비자를 재미있게 만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를 설득해 상품을 사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고계에 입문한지 몇 년 만에 ‘빅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광고를 여러 편 만들어냈다. 수염 난 사장을 직접 내세워 성공한 청량음료 광고, 도브가 세계 1등 클렌징 브렌드로 성장하는 데 큰 공을 세운 ‘4분의 1 클렌징크림’ 광고, 가난에 찌든 푸에르토리코의 이미지를 바꾼 광고 등 히트작을 계속 만들어냈다.

그는 영국 명문가에서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스퍼드대에 들어갔지만 중퇴하고 사회에 뛰어들어 많은 경험을 했다. 프랑스 파리의 호텔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조리기구 영업사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광고 일을 배우기 위해 건너간 미국에서는 갤럽의 조사원, 영국 정보부 첩보원, 농부 등으로 다양하게 일했다. 그의 이런 경험은 훗날 획기적인 광고를 만들어내는 데 자양분이 됐다.

그는 “모든 광고는 브랜드의 개성에 대한 장기 투자”라며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당시에도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품들이 점점 비슷해지자 성능이 아닌 브랜드가 광고의 중심이 됐다. 그는 헤드라인에 브랜드명을 반드시 넣고, 독자들에게 즉시 이해되는 카피를 썼다. 절대로 에둘러 말하지 않고 판매를 촉진하는 단어를 썼다.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제일 큰 소음은 시계 소리다.” 그의 광고 철학을 담은 이 카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차 광고 중 하나다. 당시 이 광고로 차가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광고를 다시 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오길비는 ‘크리에이티브’라는 말을 싫어했다. 매출 증가가 확인되지 않은 겉만 번지르르한 흥행 기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60년대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유머와 패러디 광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단순히 독창적인 광고를 만들어서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보다 소비자와 광고주 모두에게 득이 되는 광고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 ‘명쾌함이 창의성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오길비가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는 ‘소비자 중심주의’다. 그는 “소비자는 지적인 존재”라며 소비자에게 만족감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명언에 이 뜻이 함축되어 있다.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다. 당신의 아내다. 그녀를 속이지 말고 그녀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지 마라.”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