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지팡이 없이 다닐 수는 없을까.’

조영상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책임연구원과 김병우 시스템LSI사업부 선임연구원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들의 두 손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조 책임연구원은 “깜깜한 밤에 날아다니는 박쥐의 생태를 탐구해보면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며 “박쥐처럼 초음파로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 아이디어는 지난 1월 열린 ‘삼성전자 아이디어 워크숍’에서 1등을 차지, 삼성전자 창의개발연구소 과제로 선정됐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자전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제작을 위해 김정호 IT솔루션사업부 선임연구원과 변완주 무선사업부 한국하드웨어개발그룹 사원이 합류했다. 태스크포스팀은 시각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조 책임연구원은 “장애인들을 만날수록 취미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았다”며 “막대기 없이 자유롭게 걷는 것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고 했다.

아이디어대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센서가 가장 문제였다. 초음파 센서를 사용했는데 난반사 등 야외에선 적합하지 않았다. 공간인식 센서인 키넥트를 찾아냈으나 적외선이 문제였다. 햇빛에 섞인 적외선 탓에 야외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시행착오 끝에 3차원(3D) 화면을 촬영하는 것처럼 카메라 두 대로 찍어 전방 장애물을 확인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완성된 제품은 어른 손바닥 크기의 작은 상자다. 자전거 앞에 달고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연결하면 된다. 장애물이 5m 안에 들어오면 이어폰에서 소리가 난다. 오른쪽에 있으면 오른쪽 이어폰에서, 왼쪽에 있으면 왼쪽 이어폰에서 소리가 나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두개골 뼈에 신호를 줘 소리를 전달하는 골전도 이어폰을 사용,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창의적 조직으로 탈바꿈

제품을 개발한 창의개발연구소는 삼성전자가 직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말 도입한 곳이다. 지난 2월 개발한 눈동자로 움직이는 안구마우스 ‘아이캔’이 창의개발연구소의 첫 번째 과제였다. 눈동자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아이캔으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저렴한 가격의 안구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3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아이캔’ 협약을 체결하고 보급사업을 벌이고 있다.

창의개발연구소 과제로 선정되면 최대 1년까지 업무에서 벗어나 아이디어를 연구할 수 있다. 구글, 3M 등에서 창의적 활동에 하루 업무의 20%를 쓰게 하듯이 삼성도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김정호 선임연구원은 “창의개발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밤을 새웠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어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원기찬 삼성전자 인사팀장(부사장)은 “세계 1위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창의적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년부터는 사업부 차원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