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6일 밤, ‘옷로비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임혜경 부산시교육감이 피내사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뇌물수수 혐의가 밝혀져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자 급히 변호사의 조력을 구했다. 밤 9시가 넘어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에 달려온 이는 법무법인 정인 소속 김중확 변호사. 경찰과 교육감 사이에 대가성을 둘러싼 설전 끝에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고 조사를 마쳤을 때는 자정을 넘겨 오전 2시55분이었다. 그때까지 김 변호사는 임 교육감 옆에서 진술을 도왔다.

김 변호사의 등장은 경찰수사에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김 변호사는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시험(26회)에 합격했지만 법조계가 아니라 경찰에 입문한 전력을 갖고 있다. 2009년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냈고 이후 본청 수사국장 재직 중 2010년 10월 명예퇴직해 경찰을 떠났다. 경찰이 부산 교육계 수장의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하자 전 부산경찰 총수가 변호인으로 나선 것. 그러나 법조계의 해묵은 관행인 ‘전관예우’가 이 수사에는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넘겼다.

국내 대형 로펌들이 사시 출신 경찰간부와 경찰대 출신 로스쿨 졸업생 영입을 위한 물밑 작업에 나서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경찰의 수사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공약을 내놓으면서 로펌들도 향후 경찰 수사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에 대비하고 있어서다. 경찰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경찰 출신 법조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한 변호사는 “2~3년 전만 해도 경찰 수사단계에서는 자문만 해줬는데 요즘은 경찰 출신 변호사들이 수사에 입회도 하고 수사 담당자들과 상의해 서면으로 의견도 써낸다”며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수임하는 비율이 전체의 20% 정도”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 ‘경찰 수사권 확대’ 한목소리

지금처럼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독점한 상태에선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51)의 비리와 같은 사건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게 유력 대선 주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경찰이 수사하는 사건을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면서 ‘이중수사’ 논란이 빚어지고 여론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나 최소한 수사권을 강화하는 방향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박 후보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 수사권은 경찰에 주겠다는 입장이다. 박 후보는 지난 21일 퇴직 경찰 모임인 대한민국재향경우회(경우회) 행사에 참석, “검·경이 합의 하에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방식의 ‘수사권 분점’을 차기 정부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이른 시일 내 민생범죄 사건부터 경찰에 수사권을 넘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 후보는 “가벼운 범죄부터 시작해 점차적으로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게 목표”라며 “이와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해 검찰의 권력 남용을 최대한 막겠다”고 말했다.

로펌들은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새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 출신 인사를 발 빠르게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이와 무관치 않다.

◆로펌, 수사경험 있는 ‘사시 경찰’ 선호

로펌들의 스카우트전은 이미 막이 올랐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 로펌들은 최근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출신 전·현직 고위 간부들을 ‘영입 리스트’에 올려 놓고 치열한 영입 전쟁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장이나 지방청장 출신들은 일단 ‘얼굴마담’역할을 할수 있다.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경찰 수사단계에서 수임을 많이 하기 위한 전략이다. 경찰대 출신 사법고시 합격자나 로스쿨 졸업자 역시 대형 로펌들의 영입 리스트 상단에 올라와 있다.

이동희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법원 재판 단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경찰 조사 단계부터 사건을 선임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경찰 출신들은 경찰 수사 과정을 잘 알고 있어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다면 경찰 출신 법조인들의 수요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출신 법조인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법무법인 바른이다. 바른은 소송업무가 많은 로펌이다. 향후 경찰의 수사권 확대 시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고용하는 고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판단, 최근 로스쿨합격자 2명과 사시합격자 1명을 뽑았다. 현재 경찰 고위 간부출신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바른 측은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어 경찰사정을 잘 아는 인맥이 필요하다”며 “사건브로커가 아닌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경찰 출신을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앤장도 4년 전과 2년 전에 변호사자격증을 가진 경찰간부 출신 2명을 영입했다. 율촌은 올초 경찰대 법학과 출신으로 일선 경찰서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김성훈 씨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태평양에도 경찰대 출신 변호사 3명이 있고 화우도 2009년 경찰대 출신으로 경찰 경력이 5년 정도 된 변호사 한 명을 스카우트했다.

◆사시출신 현직경찰 44명…전관예우 통할까

전국 경찰 10만여명 가운데 사시 출신 경찰관은 모두 44명(행정고시 출신은 16명)이다. 사시 출신으로 최고위직은 경찰청 김정석 차장(치안정감)이다. 나머지 치안감 3명, 경무관 3명, 총경 4명, 경정 33명이 본청, 서울청, 일선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일선서 형사·수사과장 직책에 이들 사시 출신이 대거 진출해 있다. 항상 검찰과 비교되는 경찰의 수사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경찰의 포석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법조계를 선택하지 않고 대신 경찰에 입문한 이들이 로펌으로 옮길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계급정년에 걸리거나 명예퇴직할 경우엔 로펌 스카우트 ‘0’ 순위 대상자들이다.

변호사 선임 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법원의 재판 단계에서 사건을 선임하는 것과 경찰 또는 검찰의 조사 단계에서 사건을 선임하는 경우다. 법원 재판 단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면 조사를 마친 피의자 신문조서와 참고인 진술서 등 이미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에서 만든 자료로 재판에 나선다. 그러나 경찰 출신 변호사들을 경찰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로 선임하면 피의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 과정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어 판사나 검사 출신 변호사들보다 피의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내 대형 로펌의 한 대표변호사는 “전직 판·검사와 달리 각기 경찰에 들어온 통로가 다른 10만명이 넘는 거대한 경찰 조직에서 전관예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우섭/김병일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