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혈병 환자는 3000명 정도 된다. 전적으로 약물 치료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선 치료제 선택이 생사를 좌우한다. 백혈병 중에서도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경우 종전에는 ‘글리벡’(노바티스)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었다. 최근 들어선 2세대 표적항암제들이 등장해 환자의 선택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신약처방 때 보험 인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을 주고 있다. 글리벡을 사용하다가 적절한 반응을 얻지 못해 다른 치료제로 바꾸고 싶어도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2세대 표적항암제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오래된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으로 약물을 바꾸려고 할 경우 역시 보험 적용이 안 된다. 처음 시작한 치료약물만 보험이 적용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자에게 맞지 않아 치료제를 바꾸려고 해도 보험 적용이 안 돼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세대 표적항암제를 견디지 못하는 환자들이 글리벡으로 바꾸기를 원하지만 보험급여를 못 받는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사 입장에서는 글리벡과 2세대 표적항암제 간의 교차투여가 자유로워야 보다 효과적인 초기치료를 할 수 있다. 보험 여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약제의 작용기전이 일부 비슷한 만큼 최초 치료제가 효과가 없을 경우 다음 약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해 보험 인정을 하지 않는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위한 약제들은 약제별로 내성발현 부위가 다르고, 안정성 프로필도 다르기에 교차 처방시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선 초기치료 3개월이 전체 치료의 방향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설픈 보험 인정 기준 때문에 초기치료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이제 2세대 표적항암제만으로 완치할 수 있을 만큼 치료법이 발전했다.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눈 앞에 있는데도,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가로막힌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다. 이제는 합리적인 건강보험 기준이 정립돼야 할 시기가 됐다.

손상균 < 경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