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게 빼입은 월스트리트의 한 투자자는 잰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가자마자 공중전화를 붙들고 이렇게 내뱉었다. “정신나간 히피를 최고경영자(CEO)로 뽑았습니다. 그놈이 알코아를 죽일 겁니다. 갖고 있는 알코아 주식 다 던지세요.”

1987년 10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 연회장. 훗날 부시 행정부의 재무장관까지 지낸 폴 오닐이 미국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코아의 신임 CEO로서 처음 투자자를 만난 자리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소개하고, 농담도 던지면서 비용을 줄이고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식의 뻔하지만 화기애애한 인사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알루미늄 제품이라면 초콜릿 포장용 포일부터 인공위성 조립용 볼트까지 다 만들어온 이 100년 역사의 회사를 이끌겠다는 사람이 주주와 이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노동자의 안전만 강조하는 게 아닌가. 사고율 제로를 목표로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을 만들겠다거나, 화재 시 대피요령을 언급하며 연회장 비상구 쪽을 가리키는 대목에서는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오닐과 알코아의 운명 그리고 알코아 주식을 던진 투자자의 희비는 어떻게 갈렸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오닐과 알코아의 승리요, 투자자의 판단 실패다. 알코아는 오닐의 CEO 취임 1년 만에 사상 최고 이익을 거둬들였다. 오닐이 CEO 자리에서 물러난 2000년의 순이익은 그의 취임 전보다 5배나 불었다.

뉴욕타임스 심층보도 전문기자인 찰스 두히그는 새책 《습관의 힘》에서 알코아의 폭풍 성장 비밀을 오닐의 ‘습관경영’에서 찾는다. 오닐은 “모두가 탁월한 일부가 되기 위한 습관을 형성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며 ‘안전’이란 상대적으로 중요한 덕목의 습관화에서부터 시작해 조직 문화 전체를 바꿨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반복되는 행동, 즉 습관이 우리 일상과 기업 경영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파헤친다. 사람들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절약할 방법을 찾아 반복되는 일들을 습관의 끈으로 묶어놓기 때문이다.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삶이 일정한 형태를 띠는 한 삶은 습관 덩어리일 뿐”이라고 했다. 2006년 미 듀크대 연구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이 매일 하는 행동의 40%는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이메일을 체크하며 커피를 마시는 등의 일상적 행위들이 사실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이 아니라 습관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개별 습관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매일 먹는 음식, 운동패턴, 소비특성 등 습관화된 행동 양태는 삶의 구석구석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도 사람들의 습관에 주목한 지 오래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입에 넣는 행동, 옷을 입거나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는 행위 등 부지불식간에 하는 ‘행동덩이’들에서 조직 전략과 시장 공략 전략을 뽑아낸다. 미국 5대 할인마트인 타깃은 ‘습관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비자 구매 패턴을 예측하고 있다. 여성 고객이 임신했다면 몇 개월째인지도 파악해 필요한 제품의 할인쿠폰을 발송함으로써 매장을 찾게 만든다.

1900년대 초 펩소던트 치약은 ‘습관화의 고리’를 이용해 시장을 넓힌 사례로 꼽힌다. 습관은 어떤 행동을 촉발하는 ‘신호’에 이어 ‘반복 행동’이 이뤄지고, 그 행동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면서 굳어진다. 광고전문가 클로드 홉킨스는 펩소던트가 이를 하얗게 만들어준다는 보상을 강조해 성공했다. 이후 첨가물을 넣어 이를 닦은 뒤 입 안에 알싸한 느낌이 남도록 함으로써 치약으로 이를 닦는 습관이 들도록 만들었다. 펩소던트가 나오기 전까지 미국인의 7%만이 치약을 사용했는데 홉킨스의 광고가 나가고 10년이 지난 후에는 65%나 됐다. P&G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으로 꼽혔던 섬유탈취제 페브리즈가 효자상품이 된 것도 습관의 고리를 적절히 건드린 덕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습관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신호가 왔을 때 이어지는 반복 행동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삶에 긍정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습관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알코아의 오닐이 ‘안전 습관’을 강조해 조직 문화를 일신했듯이 개개인의 삶이나 조직 활동에서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핵심 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