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TV토론회는 ‘10월의 승부처’로 불린다. 생중계 토론회에서 공격과 방어를 펼치는 후보들의 한마디와 표정 하나가 부동층 표심을 흔들며 대선 승패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직 선거의 토론회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기 5년 전인 1858년 스티븐 더글러스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직을 놓고 공개 논쟁을 벌인 것이 시초다. 링컨은 당시 선거에 패했으나 2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더글러스에게 설욕했다.

대선 후보 간 첫 TV토론회는 1960년 9월26일 존 F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부통령 간에 이뤄졌다. 경륜과 노련미를 갖춘 닉슨과 신인 정치인 케네디의 대결은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나 TV토론은 두 정치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이를 계기로 미디어 정치 시대가 열렸다.

그 후 TV토론회는 1964년, 1968년, 1972년에는 열리지 않았으나 1976년 9월23일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토론회로 재개됐다.

당시 포드 대통령은 동유럽에서 소련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소련은 동유럽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실언했다. 이 발언은 며칠간 언론 톱뉴스를 장식하며 논쟁이 이어졌고 포드 대통령은 결국 연임에 실패했다.

1980년 TV토론회에서는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가 오랜 ‘카메라 경험’을 바탕으로 카터 대통령을 압도하면서 승리의 기틀을 마련했다. 73세 나이로 재선에 도전한 레이건은 상대 후보인 월터 먼데일이 나이를 물고 늘어지자 “나는 자네의 젊음과 미숙함을 공격하지 않겠다”며 재치있게 답했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대통령과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대결한 1992년 토론회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초조한 듯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2000년 조지 W 부시(아들) 텍사스 주지사와 맞붙은 앨 고어 부통령은 거만하고 참을성 없는 모습으로 비쳐져 이전의 지지율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TV토론을 ‘10월의 승부처’라고 부르는 이유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