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품고 다니는 협력사 대표…전재산 날린 채권 투자자 '눈물'
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이모씨(50)는 요즘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살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기면서 남은 차액 2억원을 모두 웅진홀딩스 회사채에 투자해놨기 때문이다. 보통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는 기업의 회사채는 무담보 채권으로 상당 기간 기다려야 겨우 투자금의 10%가량만 건질 수 있다. 이씨는 “우리 같은 힘없는 사람들의 돈은 도대체 누가 갚아주는 것이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웅진홀딩스 회사채 잔액은 약 6500억원. 이 중 절반은 이씨와 같은 개인이 투자한 돈이다.

웅진홀딩스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한 극동건설의 경우에는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200개 하도급 업체가 받지 못한 상거래 채권액만 약 3000억원. 지난 7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환기업의 사례를 보면 대기업의 법정관리행으로 협력업체가 입는 피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삼환기업의 협력업체로 남아 있는 기업은 487개로 1270억원의 채권액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협력사들은 사채까지 끌어다 쓰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협력업체채권자협의회 부대표를 맡고 있는 한준환 한지건설 사장은 “487개 협력업체 중 줄잡아 200개 정도가 도산 직전에 내몰렸고 이미 5개 업체는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일부 협력업체 대표는 유서를 지니고 다닐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기업 구조조정 제도 확 바꿔야"

웅진 사태로 통합도산법상(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법정관리 제도를 적절히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6년 동안 시행하면서 부작용을 확인한 만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은 기업의 금융권 채무만 동결하는 데 반해 법정관리는 모든 채무를 감면하는 탓에 협력업체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적지 않다.

법정관리가 부실 기업 오너의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2006년 통합도산법 시행 이후 ‘기존 관리인 유지 제도(DIP)’에 따라 법인 대표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스트 트랙’으로 빠르면 6개월 이내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어서다. 채권단으로부터 자금 관리를 받는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택하는 주된 이유다.

실제 경영권 유지를 위해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택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76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0배 가까운 712곳으로 급증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가운데 200억원 이상 채무가 있는 142개 기업의 84.5%(120개)는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대주주의 자구노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기존 대주주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정 부분 사재를 출연하는 동시에 출자전환, 감자 등을 통해 경영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 차원에서 빨리 채무를 조정하고 회생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택한 측면도 있다. 또 기존 경영진이 기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가장 합리적인 자구책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름 일리가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과 학계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원은 채권 조정을 확정하고 법정관리 회사를 감독하되 채권단이 실질적인 사후관리를 책임지는 방식을 거론하고 있다. 양형우 홍익대 법대 교수는 “우리도 독일처럼 법정관리와 관련한 기존 권한을 채권자에게 대폭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창민/김은정/김일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