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의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소명의식에 충실한 화가의 전형이었다. 토스카나 지방의 항구도시 리보르노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즐겁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강물 같은 인생’을 꿈꿨던 그의 삶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잠시도 수그러들 줄 모르는 격랑으로 점철됐다.

그 험난한 여로의 처음과 끝에서 그의 손을 붙잡아준 것은 모성애로 충만한 두 명의 헌신적인 여인이었다. 첫 여인은 바로 그의 어머니 에우제니아. 프랑스계 유대인이었던 그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피를 이어받은 마르세유의 명문가 출신으로 높은 교양의 소유자였다. 에우제니아는 1872년 이탈리아의 사업가 플라미니오 모딜리아니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단눈치오의 시를 번역하고 가명으로 서평을 발표, 가계를 꾸릴 정도로 고고한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모딜리아니를 예술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바로 어머니 에우제니아였다. 그는 12세의 어린 아들이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주저 없이 풍경화가 굴리엘모 미켈리의 아틀리에로 데리고 갈 정도였다. 모딜리아니는 이때부터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고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데만 몰두했다.

1900년 모딜리아니가 폐렴에 걸리자 요양차 나폴리,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명소를 데리고 다니며 고전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배려한 것도 그였다. 그는 모딜리아니에게 있어 어머니이자 정신적 멘토였다. 모딜리아니의 내면에서 예술가가 되려는 강렬한 욕구가 샘솟은 것도 이 여행을 통해서였다. 그는 특히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만난 그리스·로마의 예술품 속에서 미의 이상을 발견했고 14세기 시에나 화가들이 그린 기독교 성화를 통해 영혼이 고양됨을 느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그는 고향 리보르노를 떠나 피렌체의 누드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그는 유럽을 풍미하던 상징주의 미술과 접한다. 1903년에는 베네치아에서 유럽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접한 뒤 1906년 당대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 정착한다.

그는 파리에서 세잔과 툴르즈 로트레크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상징주의 미술에도 관심을 보인다. 그는 술과 여자에 탐닉하며 방탕한 생활에 빠져드는 한편 야수파, 입체파 같은 당대의 사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했다. 아무도 그의 작품을 주목하지 않았다. 가난이 어느새 그의 숨통을 죄기 시작했고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싸구려 독주가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런 고통의 나락에서 모딜리아니 앞에 어머니에 이은 두 번째 운명의 여인이 나타난다. 1917년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잔 에뷔테른을 만난 것이다. 화가는 청순함과 우아함을 겸비한 19세 미술지망생에 반해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즉석에서 사랑을 고백한다. 그때까지 남자라고는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이 우아하고 순수한 여인은 술에 전 화가를 자신의 운명적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적 구원자가 된다.

에뷔테른은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델이 화실에 들어오면 자리를 비워줬고 모딜리아니가 친구들을 만날 때도 합석하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 에뷔테른이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외면했던 부모들도 딸이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딸을 모딜리아니로부터 격리, 자신들의 집으로 옮겨 보살폈다. 그렇지만 때는 늦었다. 그 와중에 모딜리아니는 병세가 악화돼 숨을 거뒀고, 소식을 전해들은 에뷔테른은 6층 창 밖으로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화가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천사였는지 모른다.

이런 불 같은 삶과 달리 모딜리아니의 작품에는 의외로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는 평소 감정에 치우친 작품을 경멸했다. 야수파가 뿜어대는 색채의 광기와 입체파가 집착한 형태의 해체에 몸서리쳤다. 그는 세잔과 마찬가지로 변치 않는 영원의 미를 갈망했다. 그의 화폭 가득한 눈동자 없는 목이 긴 사람들, 고전적 형태미와 부드럽게 포즈를 취한 애수 어린 누드의 여인들은 그리스·로마 조각상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현대의 옷을 입힌 것 같다. 그는 비록 알코올에 취해, 감정에 취해 무질서한 삶을 살았지만 늘 영원의 미를 꿈꿨다. 그리고 그 소망은 어머니의 모성애적 사랑으로 씨앗이 뿌려졌고 에뷔테른의 헌신적 사랑 속에서 그 꽃을 피웠던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