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오롱과 듀폰 간 법적 분쟁과 관련, 향후 국내 기업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창세 제일특허법인 대표변리사(사진)는 “이번 (버지니아법원의) 금지명령은 심각한 사법주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한국 기업들이 계속 당할 수 있는 비상사태”라고 18일 말했다.

최근 미 버지니아주 지방법원은 코오롱이 듀폰의 영업비밀을 가로채 아라미드 섬유를 생산해 왔다며 향후 20년간 전 세계에서 제조·판매·마케팅 등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코오롱은 이에 즉시항고를 해 효력을 정지시키고, 지난해부터 이어온 손해배상 소송 1심 결과(1조원 배상)에 대해 항소한 상태다.

김 대표는 “한국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신속히 아미커스 브리프(amicus brief)를 제출해 고작 미국 내 한 지방법원의 판사(로버트 E 페인)가 세계 시장을 논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미 당국에 적극 알려 이 같은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미커스 브리프는 특정 소송사건에서 논란이 큰 법률적 쟁점이 있을 경우 각종 단체나 학자, 정부기관 등이 법정의견서를 제출해 법원의 판단에 제동을 걸거나 조언을 하는 미국의 특수한 제도다.

사실 이번 (버지니아) 1심 명령은 하자가 많다. 국내 민사소송법은 외국판결(명령 포함)을 내린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돼야만 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1심은 또 코오롱이 전산망 내 모든 듀폰 관련 영업비밀을 파기하고, 제대로 파기했는지 현지 전문가를 파견해 확인하도록 하는 강제집행 명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국내 민사집행법상 외국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은 해당 판결이 확정판결이어야 하고, 한국법원의 집행판결을 따로 거쳐야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문제는 페인 판사가 ‘법정모욕죄(contempt of court)’라는 비장의 무기를 들고 나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페인 판사 측이 “코오롱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정모욕죄로 징계하고, 징계 내용은 판사의 재량사항이기 때문에 관련자 구속이나 제한없는 벌과금을 매길 수도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법주권을 내세워 간단히 무시할 수 있던 경고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코오롱이 판결 직후 즉시항고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미 현지 변호사업계는 이번 케이스(case)를 크게 반기고 있다”며 “이를 판례로 만들면 개별 국가에서 일일이 침해 소송을 걸지 않고 안방에서 특정 기업의 글로벌 경쟁업체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 소송의 90% 이상은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항소법원에서 끝나며, 이것이 판례로 정립된다. 그는 “미 항소법원 판례는 미국법원의 치외법권적 판결 효력이 미국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국한돼야 하며, 외국 사법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 항소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경기고·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 엑슨 특허변호사, 대우조선해양 전무, 대우전자 부사장 등을 거쳐 1989년 제일특허법인을 창립해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