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늘 알프레드 마샬이 했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샬은 그의 주저인 《경제학원리》 첫 페이지에서 ‘경제학은 부(富)의 축적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인간에 관한 연구의 일부’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경제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진보 경제학계의 원로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85)의 삶과 사상을 담은 대화록이 나왔다. 제자 윤진호 인하대 교수가 변 교수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해 펴낸 《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앓다》다. 변 교수의 자전적 회고담 격인 이 책은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경제학자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현대 한국사이기도 하다.

변 교수는 ‘행동하는 지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4·19혁명의 불씨를 되살린 것으로 평가받는 4·25 교수단 데모에 참가했고, 1980년대에는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다 해직되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비판했던 변 교수는 1979년 10월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나는 고도성장보다는 물가와 국제수지를 고려한 안정성장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일반물가보다는 주로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물품의 가격을 잡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묵묵히 경청하였을 뿐 별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날이 내가 박 대통령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습니다.”

변 교수는 1927년 황해도 황주군에서 태어나 경기중과 서울상대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진학했다. 1955년 서울대 상대 교수로 부임해 1992년 정년퇴임하기까지 37년간 학술 활동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19세기 후반 신고전학파를 창시한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의 경구 ‘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마샬의 학문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일에 헌신했다.

변 교수는 “시장경제가 계획경제에 견주어 우월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시장이냐 정부냐의 2분법이 아니라 어떤 방법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더 필요한가 하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