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막강 구매력 앞세워 삼성 전방위 압박
‘막판 협상용 카드인가 아니면 보복의 칼을 빼든 것인가.’

애플이 오는 12일 공개할 신형 스마트폰 아이폰5(가칭)에 들어갈 핵심 부품을 삼성전자에서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 여러 관측이 나온다.

애플은 아이폰5 본격 출시에 앞서 대규모 거래선에 공급할 최대 1500만대로 알려진 초기 물량을 생산하면서 삼성에 메모리칩을 주문하지 않았다. 반도체뿐 아니라 액정표시장치(LCD), 배터리 등도 다른 구매선에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의 특허 분쟁이 확전되면서 애플이 부품 구매선을 삼성 밖으로 돌릴 것이라는 관측과 삼성의 뛰어난 품질 경쟁력에 기대고 있는 애플이 ‘부품 독립’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렸다. 애플이 부품 공급선을 다변화할 경우 글로벌 서플라이체인(부품 공급망)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애플, 압박카드인가 결별 수순인가

애플은 삼성 제품의 최대 구매자다. 지난해 삼성전자에서 10조원 규모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사들였다. 아이폰 부품의 40% 정도를 삼성에서 가져다 썼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삼성전자의 부품 사용을 줄이고 있다. 스마트폰 경쟁이 격화되고 특허 소송까지 겪으면서 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돼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통상 하나의 부품을 3~4개사에서 조달해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납품가를 깎는 공급선 다변화 전략을 취해왔다”며 “특히 삼성이 아니어도 조달 가능한 부품은 적극적으로 다른 곳에서 사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폰5 초기 물량에서 삼성 메모리칩을 배제한 것은 본격적인 ‘결별’을 향한 강한 뜻이 담겨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다른 부품과 달리 낸드플래시 모바일D램 등은 공급사가 3곳뿐이고 그중 삼성이 확고한 1위인 제품이어서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부품 공급의 안정성, 가격 인하 레버리지 등을 일부 포기하며 무리해서라도 삼성을 배제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또 모든 아이패드 패널을 납품해온 삼성디스플레이를 다음달 출시될 아이패드미니 협력사에서 제외했으며, 삼성전자에 의존해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대만 TSMC에서 테스트 중이다.

다만 결별 의지가 강하다고 해서 삼성과 완전 결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애플은 올초 뉴아이패드 패널을 샤프와 LG디스플레이에서만 조달하려다 불량 문제를 겪었으며 아이폰5 시제품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영국 IT전문 펀드인 폴리캐피털의 벤 로고프 매니저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와 관계가 안 좋아지면 다른 공급사를 찾아야 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애플 충격 이겨낼까

삼성전자는 지난해 1분기 애플로부터 전체 매출(36조9850억원)의 5.8%(2조1451억원)를 올렸다. 애플이 부품 주문을 줄이면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다. 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6%는 아니더라도 일부 매출 충격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영향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등은 생산업체와 물량이 한정돼 있어 경쟁사가 애플에 더 파는 만큼 경쟁업체 고객에 일정 부분 팔 수 있을 것”이라며 “애플은 납품가격, 조건이 가혹하기 때문에 수익성 면에서도 손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 부품은 경쟁력이 있어 상당한 대체 수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부품사들은 수혜가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올해 애플의 반도체 구매액은 전체 시장의 28%로 지난해(24.3%)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애플 주문이 늘면 실적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분기 뉴아이패드용 패널에 초기 불량이 발생해 납품이 이뤄지지 않자 매출 6184억원, 영업적자 1780억원을 냈으나 2분기 납품이 정상화되면서 매출 6910억원, 영업적자 260억원을 기록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