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재충전 하러 떠났는데 체력도 통장도 '완전 방전'…"휴가가 아니었스무니다"
“개그콘서트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프로그램이었어요.”

휴가 복귀 첫날, 서류가 잔뜩 쌓인 책상으로 돌아왔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오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복귀하고 나니 몸은 천근 만근이요, 마음은 우울하기만 하다. 이래서 ‘휴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휴가에서 막 복귀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왔나보다. 평소 즐겨보던 일요일 밤 ‘개콘’도 다음날 출근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ㅠㅠ.

아, 물론 좋은 일도 있다. “휴가 잘 갔다왔냐”며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동료들의 얼굴이 반갑다. 얄미운 정 부장의 휴가 소식도 위안이다. “요새는 7월 말, 8월 초에 비가 온다고. 진정한 여름 휴가는 8월 말이지”라며 이번주 남 보란듯 휴가를 떠난 정 부장. 그의 휴가지 남해에는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몰려 오고 있다지. 내가 또 한번 휴가를 떠난 기분이다. ㅋㅋ. 퇴근길에 휴가 때 찍은 사진을 메모와 곁들여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휴가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조금씩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올여름 직장인들의 휴가 풍속도를 재구성해 봤다.

◆여행 준비? 휴대폰 하나로 끝

광고 회사에 근무하는 송 과장은 1년간 모은 경비로 여름 휴가를 스페인에서 보냈다. 송 과장의 여행가방은 어느 때보다 단촐했다. 두꺼운 여행책자나 지도, 디지털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하나만 챙겼다. 첫날부터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현지에서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친구들과 공유했다.

1,2년 전만 해도 해외 여행 중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무선랜(와이파이)이 터지는 장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주요 국가에서는 와이파이 없이도 하루 1만원 정도만 내면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현지에서 다음 여행 장소를 찾을 때는 지도를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으로 구글 맵 등 지도 앱을 검색하면 현재 자신의 위치와 찾아갈 장소를 한눈에 파악하고 내비게이션처럼 안내받을 수 있다. 휴대가 불편한 두꺼운 여행책자도 필요없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전자책을 다운로드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며 찾아다닌다.

◆불황기에 뜬 ‘스마트 휴가’

증권사에 근무하는 윤 과장은 친구들과 가족 동반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사의 제주도 콘도 이용권에 당첨됐는데,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같이 가자며 달려들었던 것. 여행 경비를 나눠 부담할 수 있고 아이들도 또래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어 좋았다. 동호회를 통해 사귄 제주도 지인들을 통해 값싸고 맛있는 식당을 소개받고,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활용해 저렴한 가격에 친구들과 골프 라운딩도 했다.

중소기업 직원 김모 대리는 얼마 전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통해 태국 여행을 예약했다. 왕복 항공권에 호텔 3박, 유류할증료 등을 포함해 50만원대 가격에 쿠폰을 구입했다. 해외 호텔예약, 렌터카 사이트를 검색하며 일일이 예약도 마쳤다. 인터넷 여행카페 등을 통해 저렴한 숙소나 식당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여행경비 50만원, 한끼 식사가 25만원

스마트 휴가에는 함정도 있다. 역시 소셜커머스를 통해 태국 여행을 떠난 정모 과장은 기본 비용을 아낀 만큼 휴가지에서는 여유있게 즐길 생각이었다. 첫날부터 태국의 유명한 맛집을 향해 택시를 잡았다. ‘OO식당’에 데려다 달라고 하니 택시 기사는 ‘OK’라며 잠시 후 한 허름한 식당에 내려줬다. 생각보다 평범한 맛에 실망한 후 계산을 하려는 찰나, 계산서에는 우리 돈으로 약 25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알고보니 그 식당은 유명 식당의 ‘짝퉁’으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기로 유명한 곳이다. 택시 기사는 관광객들을 연결해주고 식당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브로커였다.

◆기러기 휴가

정유회사에 다니는 황 차장은 최근 딸 2명과 9일짜리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내년 중학생이 되는 큰 딸에게 해외 여행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부부가 같이 가려니 경비 부담도 크고 휴가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결국 아내는 출근하고 황 차장이 유럽을 돌며 딸들의 짐꾼과 카메라맨이 돼야 했다.

증권사 임 과장은 반대로 아내가 자식들을 데리고 미국을 다녀온 케이스다. 미국 친척집을 방문하면서 아내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임 과장은 10일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기러기 체험을 했다. 최근에는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부부 중 한 명만 자녀들을 데리고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부산의 피부과로 휴가 간 김 대리

이달 초 1주일간 낭만적인 자전거 여행으로 여름 휴가를 보낸 김 대리는 아직도 피부과를 다니고 있다. 김 대리가 자전거 여행을 떠난 것은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졌을 때다. 부산을 목표로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 길을 따라 서울에서부터 산뜻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지만 뙤약볕에 김 대리의 얼굴과 팔은 벌겋게 익기 시작했다. 3박4일에 걸쳐 하루 100㎞씩 강행군을 펼친 끝에 부산에 도착한 김 대리는 바로 병원 피부과부터 가야 했다. 양팔과 목 뒤까지 수포가 생기면서 쓰라림을 견딜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 “여름이 다 가도록 병원을 다니는 것도 서럽지만 나이 먹고 더 미련해졌다는 직장 상사의 핀잔이 더 참기 힘드네요.”

◆모르는 게 죄입니까?

대기업 신입사원 조모씨는 첫 여름휴가를 해외에서 보낼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지난 7월 초 이 대리가 나눠준 부서원 휴가 일정을 정리한 액셀 파일에 자신의 휴가 계획을 적어 넣을 때까지는. 휴가 전날 박 부장에게 전화를 건 조씨. “부장님, 첫 휴가 잘 다녀오겠습니다”는 그의 말에 박 부장 왈, “무슨 휴가? 언제 결재 올렸어?” 조씨는 부서원 휴가 계획을 미리 파악하려는 비공식 파일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 부장의 사인이 필요한 휴가원을 따로 내지 않은 것이다. 항공권에 숙박까지 모든 예약을 끝낸 상황이었던 조 주임은 온갖 질책을 들으며 첫 휴가를 떠났다. “끝나고 돌아오니 ‘신입사원 재교육’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더군요. 모르는 게 죄인가 봅니다.”

고경봉/김일규/정소람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