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루상, 볼일을 보지 않스므니다.”

학생이 엉뚱한 말을 하자 선생님이 묻는다. “사람이 볼일을 보지 않는 게 말이 돼?”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갸루상, 사람이 아니므니다.”

개그맨 박성호(38·사진)가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멘붕스쿨’에서 ‘갸루상’ 캐릭터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는 일본의 ‘갸루족’ 치장을 하고선 맥락이 닿지 않는 엉뚱한 말을 쏟아낸다. 밖에서 누가 기다린다고 하자 “저승사자이므니다”라고 답하거나, 어디서 태어났느냐는 질문에는 “알에서 태어났스므니다”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이 밑도 끝도 없는 ‘갸루상’식 화법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갸루는 영어 걸(girl)의 일본식 발음으로, 검게 태운 피부에 노란머리, 짙은 눈화장을 한 일본여성을 말한다.

서울 여의도동 KBS 사옥에서 만난 그는 “갸루상은 2012년형 바보 캐릭터예요. 영구, 맹구가 ‘땜빵’ 가발 쓰고 콧물을 칠하고 바보 연기를 했다면 갸루상은 독특한 화장에 노란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하는 거죠. 외모가 바뀌었을 뿐 엉뚱한 말을 내뱉는 건 영구나 갸루상이나 매한가지예요.”

그는 시청자들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갸루상이 친근한 ‘바보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뒷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는 개그는 재미없다”는 그는 “기존 개그에 식상해하는 이들이 예측불가능한 갸루상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갸루상 캐릭터는 그의 아내 이지영 씨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이씨가 케이블TV의 ‘화성인바이러스’란 프로그램을 보다가 갸루족 치장을 하고 다니는 남성을 본 것. 아내의 제안에 ‘이거다’ 하고 감이 왔다는 그는 문제아들이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코너인 ‘멘붕스쿨’에 갸루상을 넣기로 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일본인을 희화화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그는 “일부 일본 네티즌들이 반발하기도 하는데 한국 네티즌들이 대신 싸우고 보호해주고 있다”며 “끝까지 열심히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9년부터 쉬지 않고 개그콘서트 무대에 오르고 있다. 운동권학생, 다중이, 스테파니, 남보원의 강기갑까지 그간 큰 호응을 얻은 캐릭터도 여럿이다. 조금만 감이 떨어져도 도태되는 개그계에서 1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비결이 뭘까. 그는 “신문 등을 보면서 시대흐름을 따라잡는 것”이라고 했다. 뉴스를 보면서 이 시대가 원하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그의 필살기인 셈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단기적으로는 삼성중공업의 주식 4만주를 사는 거고요. 중장기적으로는 아프리카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엉뚱한 답을 했다. 그러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됐다.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과 캐릭터를 구축해 후배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개그맨으로 남고 싶어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