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병원을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 시대가 순차적으로 열린다. 종전까지는 환자가 의사를 직접 대면(對面)한 진료만 의료법상 인정됐다.

정부는 17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의료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 교도소 수감자, 전방 근무 군인, 오·벽지 주민 등에게 우선 적용된다. 정부는 앞으로 5년 내 일반인에게도 원격진료를 전면 개방할 방침이다.

◆집에서 화상으로 의사 진료 받는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서 앞으로 병원에 가야만 진료와 치료를 받는 기존 의료 전달체계가 완전히 바뀔 전망이다. 예컨대 부정맥 환자가 직장에서 휴대폰을 이용해 심전도를 체크하고, 고혈압 환자가 집에서 병원과 연결된 혈압·혈당·체온 측정기로 혈압관리를 받으며 의사의 화상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코골이 환자가 스마트폰 녹음기능을 이용해 수면 무호흡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밤새 체크했다가 아침에 의사의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원격진료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건호 가톨릭대 의대 U헬스사업단 교수는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폭증하는 고령사회에서 유헬스케어, 특히 원격진료가 노인성 질병의 악화를 효율적으로 막고 의료비를 절감하는 최대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은 크다. 환자들의 편의는 크게 증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개원의 중심으로 이뤄진 의사협회는 ‘시기상조’ ‘진료 혼란’ ‘외래환자 감소’ 등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도 민간 보험사·통신회사가 관여할 수 있는 사실상의 ‘의료 민영화’라며 반대하고 있다.

◆개원의 반발…법 개정 쉽지 않을 듯

원격진료에 필요한 네트워크와 솔루션을 갖춘 통신사 등 기업들은 크게 반기는 모습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는 모두 신성장 동력으로 U헬스 분야를 꼽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1월 서울대병원과 ‘헬스커넥트’란 합작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추진 중이다. 모바일 기반 건강관리서비스와 디지털병원의 해외진출 등을 계획하고 있다. 원격진료시스템은 디지털병원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KT는 연세의료원과 ‘후헬스케어’란 합작법인을 만들어 의료-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LG유플러스도 지난 5월 보령제약과 융합형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통신사들은 현재 U헬스 사업이 네트워크 제공과 솔루션 구축 등에 그치고 있지만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기존 사업을 확장,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국내 U헬스 산업의 활성화와 이를 통한 해외 수출 등이 예상돼 사업자 입장에서 크게 환영한다”며 “KT가 갖고 있는 유무선 가입자 3000만명과 병원 네트워크를 결합할 경우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는 “새로운 의료시장이 열리는 측면이 있지만 개원의들의 수익성을 보장하지 않는 한 향후 국회에서 추진되는 의료법 개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혁/이승우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