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한일경상학회장
"정치 갈등, 경제 협력으로 풀어가자"

"국내 산업의 취약점은 '속' 에 있어요. 최종재 분야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최고 수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소재부품 경쟁력은 약합니다. 핵심 부품은 여전히 일본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일본과의 적극적 경제교류와 기술협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기동 한일경상학회장(56·사진)은 한일 경제교류의 필요성을 '하이브리드' 산업의 성격에서 찾았다. 자동차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이 대략 2만~ 2만 5000여개. 이 가운데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17일 대구 계명대 성서캠퍼스에 양국 경제학자 110여명을 불러 모으는 데 앞장섰다.

이날 학회와 일본 동아시아경제경영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논의되는 경제 분야 교류·협력 방안이 독도 문제로 불붙은 양국의 정치적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한일 경제교류는 정치적 마찰과 별개로 지속·확대돼야 한다" 고 단언했다. 그는 "경제교류마저 위축된다면 양국이 무역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전면적 관계 단절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며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번 대회는 적절한 시기에 열린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양적 성장의 반작용으로 수도권과 지역, 소득 계층 간의 양극화 문제가 발생했고 일본은 오랜 불황에 허덕이는 등 양국 경제가 벽에 부딪혔다" 고 진단하며 "양국의 협력을 통해 종래의 성장 패턴을 바꿔나갈 필요성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고 설명했다.

학회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소재부품 산업이다. 이 분야는 대일무역 역조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소재부품 분야 경쟁력이 일천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때문에 이번 학술대회에서 별도의 세션을 만들어 대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이 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최종재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에 대한 핵심 부품 의존도가 너무 높다" 며 "별도 세션을 설치해 양국 소재부품의 경쟁력을 분석하고, 어떤 정책적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다루기로 했다" 고 덧붙였다.

그는 '전략적 선택과 집중' 을 강조했다. 정부 지원을 통해 국내 산업의 비교우위 분야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일본 내에서 산업 경쟁력을 잃어가는 소재부품 분야의 기술이전 노력을 병행한다면 답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은 "일본이 경제규모가 월등히 크기 때문에 국내 모든 소재부품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힘들다" 면서도 "상대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진 부분에 집중, 일본 기업에 중간재를 납품해 자연스레 우수기술을 공유하거나 지도를 받는 방법이 있다" 고 제시했다.

경제교류 강화가 냉각된 한일관계를 푸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도 기대했다. 그는 "양국이 경제교류 확대에 의한 성장과 이익의 과실을 인식한다면 정치 쟁점이 경제교류에 저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 이라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한일 양국의 경제 문제부터 정치 분야까지 '점진적 조정' 을 주문했다.

그는 "지금의 정치 갈등도 그렇지만 양국 경제교류 역시 포괄적 합의보다는 예외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며 "예컨대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이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보하고, 합의된 부분부터 교류를 시작해 차근차근 확대해나가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대구=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