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비누는 보통 2유로에 팔리지만 미국산 코르 비누는 90유로에 달한다.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는 500㎖들이 생수가 500~1000원이지만 미국산 생수 ‘블링 H2O’는 30만원에 팔린다. 동종 제품 간 가격 차이가 이처럼 큰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의 감정과 무의식을 파고든 ‘감정 강화 마케팅’ 때문이다.

코르 비누에는 최신 나노기술을 적용해 기본 동기인 세정 기능을 최고로 강화시켰다고 선전한다. 블링 H2O 생수는 테네시주의 산악 심층에서 발원한 물을 9단계의 정제 과정을 거친 뒤 오존과 자외선 처리까지 마쳤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세련되게 디자인한 용기에 담았다. 이 같은 정보들이 모여 뇌의 감정을 자극해 다른 제품보다 수백배 비싼 가격에도 구매를 결정하게 만든다. 소비자들은 결코 이성적이 아니며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모션》은 최신 뇌과학에 입각해 소비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방법을 살펴본 마케팅 서적이다. 감정과 무의식이란 키워드를 마케팅과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수익으로 연결짓는지 밝힌다.

과거에는 물건을 살 때 대뇌의 신피질에서 이성이 결정을 내린다고 여겨졌다. 최근에는 간뇌와 중뇌의 변연계에서 감정이 결정을 내리며 이 과정은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요컨대 감정이 상품과 브랜드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감정이 강할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억제될수록 뇌의 입장에서 해당 상품과 브랜드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제럴드 잘트만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소비자의 욕구는 단지 5%만이 외부적으로 표현되고 나머지 95%는 무의식적인 형태로 내재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가 욕구를 입 밖으로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소비자 뇌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감정선의 세포들을 활성화시키는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지위와 품격 등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일깨워 과감하게 베팅하게 만들라는 주문이다.

뿐만 아니다. 가령 ‘메르세데스 S클래스’ 자동차에서 보듯 브랜드가 단순히 지위를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매자의 자의식을 강화하고,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며 성공한 사람이란 느낌을 갖도록 만든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고가 러닝화를 장만한 사람들은 올림픽 우승자와 세계 챔피언의 우월감을 함께 구입한다. 유서 깊은 브랜드는 거의 종교처럼 강력하다.

디자인이 가격 차를 결정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껌 제조회사 리글리는 치아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효능을 강조하며 약병 모양의 용기 형태로 대성공을 거뒀다. 또 다른 커피 기기는 웃는 모습으로 디자인해 판매가 급증했다. 상품과 브랜드의 색깔과 소리, 후각, 촉각 등에 따라 판매량과 가격이 달라진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