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가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친 문제는 자본 부족이었다. 정부는 화폐개혁, 민간차관, 외국인 투자 장려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금을 마련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자본시장을 육성해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자본시장육성법’을 제정했다. 거래소 같은 인프라도 만들고 세금 혜택도 주며 자본시장 활성화를 촉진했다.

그러나 자본시장 활성화란 야심찬 목표는 1970년대가 넘어서도 달성되지 않았다. 기업공개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72년 1차로 110개의 공개 대상 기업을 선정했다. 그리고 40개 기업을 상장시켰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두 해 동안 100여개의 기업을 신규 상장했다. 기업공개는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세계 시장경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제 기업공개 정책으로 이 과정을 단기간에 이뤄냈다.

《시장경제의 재발견》에서는 이런 정부 개입정책을 ‘한국형 자본주의 발전모형’의 좋은 사례라고 말한다.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민간 연구소인 시장경제연구원(MERI)의 경제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1960년대 이래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 속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시장경제 역사를 설명한다.

강제 기업공개는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 자체는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는 ‘역설’의 정책이었다. 기존 주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 소유 기업의 일부를 강제로 매각하는 정책이었기 때문. 이 책은 “한국 시장경제의 발전은 ‘역설의 정책’으로 점철돼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 시장경제는 민간기업이 스스로 구축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계획하고 설계해서 만들어낸 것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정부 주도형’으로 발전한 것은 성장 초기였으며 이후에는 민간의 역할이 더 컸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민간의 역할이 과소평가됐다. 남미 등 정부 주도하에 초고속 성장을 추구했던 다른 나라들이 실패했던 것과 달리 한국이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민간 분야의 활발한 움직임 덕분이었다.

저자들은 “경제 발전 단계에 맞춰 정부의 시장개입이 변해갔다”는 점에 주목한다. 초기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1980년대부터는 민간 주도 경제운영으로 변했다. 저자들은 “정부는 경쟁 촉진과 대내외의 개방, 그리고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정도를 계속 줄여나갔다”고 말한다.

한편 교육·복지·노사관계 등 상대적으로 비시장적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분야에서 점점 시장경제적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저자들은 “1987년 이후 노조활동이 활성화된 노동시장의 경우는 시장의 ‘역풍’을 맞은 사례”라고 말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노조활동이 노동시장을 왜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들은 고임금과 노동경직성에 대해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으로 대응했다. 저자들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간 간극이 점점 커지며 노동시장이 왜곡돼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 논쟁이 뜨겁다. 재벌개혁, 무상복지 등 여러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책 환경과 맞아떨어져야 성과가 있다. 저자들은 “시장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정책’은 경제 발전의 핵심이 아니라 시장경제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촉매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부에서 시장으로 바꾸면 좋은 해답이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