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노키아·소니 몰락 '진짜 이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한 대기업의 대주주 지분이 적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외국의 대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인수·합병(M&A)을 하다보면 대주주 지분율은 떨어진다. 이런 대기업들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순환출자’했던 것에 대해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과 민주통합당이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가공의결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기업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경영권 무너진 노키아와 소니

대주주의 경영권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사업분야가 다양할수록 중요해진다. 이를 무시했다가 추락한 대표적인 기업이 노키아와 소니다.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였던 핀란드 노키아는 애플보다 10년가량 앞서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문제는 스마트폰 사업부와 일반휴대폰 사업부 간 갈등이었다. 양쪽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내 정치에 매달렸다.

폴 제이콥스 퀄컴 최고경영자(CEO)가 “노키아와 함께 일하면서 놀랐던 사실은 전략 수립에 다른 회사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기회가 될 만한 기술을 노키아에 보여주면 6~9개월 동안 평가만 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삼성전자 같은 국내 대기업에서도 회사 내부 갈등은 늘 생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격렬히 싸우는 것이 ‘반도체를 애플에 공급하는 사업부문’에는 전혀 달갑지 않다. 부문장들 간 경쟁이 회사 발전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해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대주주는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 내친다. 삼성의 CEO 인사는 내부 경쟁이 부정적으로 흐를 때 단행되는 사례가 많았다.

노키아에는 불행하게도 대주주의 확고한 경영권이 없었다. 삼성전자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바다(bada)’를 과감히 버렸지만, 노키아는 내부 갈등 때문에 ‘심비안(symbian)’을 포기하지 못했다.

일본 소니의 몰락도 회사 내부의 다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워크맨을 필두로 하는 하드웨어와 소니뮤직이라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두루 갖춰 ‘애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워크맨 시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MP3 플레이어 사업에 소극적이었고, 애플의 아이튠즈 같은 음원사이트를 만들기에는 소니뮤직 부문의 저항이 너무 컸다.

상당수 정치인들은 한국 대기업들의 대주주 지분이 너무 적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1970년대와 80년대 추진했던 ‘소유 분산’ 정책의 성과다. 1972년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은 대주주 지분을 줄여 경제 성장의 과실을 국민과 나눠갖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1980년대 유상증자를 적극 독려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순환출자 공격은 ‘퇴보’

정부는 경영권 상실을 우려하는 대주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5%룰(5% 이상 지분 취득 시 신고)과 10%룰(10% 이상 지분취득 제한)까지 만들어줬다. 이런 경영권 보호 장치들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외국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모두 폐지됐다. 경영권 상실 위험에 노출된 기업들은 순환출자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대주주들은 계열사를 정리하는 방식 등으로 지분율 높이기에 나설 것이다. 대주주 지분율을 떨어뜨리는 신규 투자나 M&A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순환출자 공격이 ‘우리 사회의 퇴보’로 귀결될 공산이 큰 이유다.

현승윤 IT모바일 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