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혁신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버나드 문 스파크랩(SparkLabs) 공동창업자(41)는 “안타까웠다”고 했다. 한국에 열정과 실력, 창의성을 갖춘 젊은 창업가들이 많은데 글로벌 시장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는 것.

재미교포 2세인 그는 1990년대 말 인터넷붐 당시 창업 시장에 뛰어들어 10년 넘게 산전수전을 겪은 사업가다. 이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모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시장을 휘젓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달 31일 실리콘밸리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창업기업을 육성하는 전문회사(accelerator) 스파크랩을 한국에 설립했다.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턴 서프 구글 부사장도 ‘멘토’로 참여했다. “한국 젊은이들과 글로벌 시장 간에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문 대표를 전화 인터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인터넷붐이 한창이던 1998년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정책학 석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 창업에 미쳐 있을 때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도 창업을 하셨을 정도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술이나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회사에 다니던 친구들이 자주 전화해 사업 아이디어를 물어왔다. 그러던 중 2명의 친구가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해왔고 나도 받아들였다. 그렇게 진로가 바뀌었고 홍콩, 서울 등에서 일하다 2004년 실리콘밸리에 왔다.”

▶창업 아이템은 뭐였나.

“처음에는 레드헤링(세계적인 IT 잡지) 창업자 토니 퍼킨스와 함께 기업들을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고잉온네트웍스(GoingOn Networks)’를 창업했다. 그 후 3개 정도 회사를 더 창업했고 다른 창업가들에게 자문도 해주면서 경험과 인맥을 쌓았다. 지금은 비드퀵이라는 웹콘퍼런스 솔루션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왜 한국에서 사업 할 마음을 먹었나.

“최근 몇 년간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한국 창업가들을 많이 만났다.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트렌드다. 과거 한국 벤처기업들의 최대 관심사는 삼성전자와 NHN이었다. 사업을 키워서 국내 대기업들에 매각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이제는 출구전략도 글로벌화됐다. ‘내가 만든 회사를 구글이 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들이 많아졌다. 재미교포로서 이런 한국의 창업가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도와줘야겠다는 일종의 ‘소명’을 느껴왔다. 그러던 중 호스트웨이(세계적인 호스팅서비스 회사)의 공동창업자인 이한주 대표가 함께 한국 창업기업 육성사업을 시작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왔다. 마침 오랜 친구인 김호민 이노티브 회장(게임개발사 넥슨노바 전 대표)과도 뜻이 맞아 함께 시작했다.”

▶페이스북보다 한발 앞서 한국에서 성공했던 싸이월드는 왜 세계 시장에서 고전했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을 세계 시장으로 이끌어줄 적합한 인재를 고용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현지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꼭 미국에 진출할 때 한국인들을 보낸다. 좋은 전략이 아니다. 미국으로 파견되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 시장의 특성과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을 잘 모르고 진출했다가 철수한 미국 대기업들을 생각해보라.”

▶싸이월드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한다면.

“싸이월드의 경우 나와 ‘고잉온네트웍스’를 함께 창업했던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창업가 칼 웨스코트를 컨설턴트로 고용했다. 웨스코트는 찰스슈왑 등 증권사들에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을 개발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싸이월드가 웨스코트에게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자문을 맡긴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그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웨스코트는 싸이월드의 사업모델과 유저인터페이스(UI)를 보고 한국에서처럼 20~30대를 겨냥하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10대를 겨냥하라는 얘기였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도 미국 문화를 잘 알기 때문에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싸이월드를 인수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당시 경영진들은 한국에서 성공한 경험을 미국 시장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싶어 했다.”

▶한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의 그런 안타까운 사례가 스파크랩을 설립한 이유로 들린다.

“미국에 진출하려면 우선 사람을 알아야 한다. 한국 창업기업들은 실리콘밸리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창시자 중 한 명인 빈턴 서프 구글 부사장, 미국 경영 구루(대가) 중 한 명인 마크 큐반 댈러스 매버릭스(농구팀) 구단주 등이 우리의 멘토로 참여한다. 스파크랩에 참여하면 이런 거물들에게 직접 자문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률자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파트너로 끌어들인 윌슨 손시니(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로펌이다. 한국의 창업기업이 혼자서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고 하면 아마도 2류 로펌을 써야 할 것이고 그러면 최고의 법률자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스파크랩은 세계적 수준의 멘토들을 60여명이나 확보했다.

“멘토들은 돈을 받지 않고 자문을 해준다. 미국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들이 창업기업들을 도와주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들도 모두 처음에는 초기 단계의 창업가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업환경을 평가한다면.

“한국에는 굉장히 좋은 혁신가와 엔지니어, 디자이너들이 많다. 모두들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을 감수할 환경은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사업에 실패하면 창업가의 개인 재산도 못 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다. 나는 벌써 두 번이나 창업에 실패했지만 또 다른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미국처럼 창업가 정신을 독려하는 파산법 등 법률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스파크랩도 새로운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버나드 문은

197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위스콘신대에서 영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정책학 석사과정을 밟다가 1998년 인터넷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창업한 두 개 회사는 실패했으나 2004년 세 번째로 공동 창업한 기업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고잉네트웍스는 최근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현재 기업들을 상대로 웹콘퍼런스 솔루션을 판매하는 비드퀵이라는 네 번째 창업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파크랩' 은…2만5000달러 자금 지원…3개월 간 인큐베이팅

버나드 문 대표가 이한주 호스트웨이 공동창업자, 김호민 이노티브 회장과 함께 설립한 스파크랩은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startup accelerator)’라고 불리는 업종이다.

‘벤처 인큐베이팅’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초기 단계 창업기업들에 소액을 투자해 벤처 단계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라는 기업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안철수 재단’의 롤모델이 바로 와이콤비네이터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파크랩은 와이콤비네이터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대상을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 창업기업’들로 제한했다. 한번에 4~8개의 팀을 선정, 2만5000달러의 창업 지원금과 함께 3개월간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무료 사무실과 각종 인프라는 물론 기술·마케팅·디자인·전략 등 각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을 멘토로 연결시켜준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언론과 투자자들을 상대로 제품 및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해준다. 스파크랩은 이 같은 지원을 하는 대가로 창업기업의 지분 6%를 확보해 향후 투자수익을 얻게 된다. 스파크랩에 관한 정보는 www.sparklabs.co.kr 에서 볼 수 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