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후발 주자의 입장에서 선행의 성공 사례를 효율적으로 모방할 때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선발 주자의 입장에서 타국을 이끌어야 할 처지가 되면 사고가 정지해버립니다. 마치 일본인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또는 일본인만은 타국의 모범이 되는 것이 금지돼 있거나 심지어 그런 일을 하면 일본인은 이미 일본인이 아니게 돼버린다는 듯이 말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일본 고베여학원대 명예교수(62)가 분석한 일본과 일본인론이다. 그는 《일본 변경론》에서 일본인의 고유한 사고나 행동의 특성을 ‘변경성(邊境性)’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은 여기가 아닌 저 바깥 어딘가에 세계의 중심인 ‘절대적 가치체계’가 있고, 어떻게 하면 그것에 가깝게 가거나 멀어지는지 그 거리에 대한 의식에 기초해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새로운 것을 외부세계에서 찾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한 치도 변하지 않는다”고 일본인의 행동 패턴을 꼬집은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마루야마, 타쿠앙 선사,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 등 유명 인사는 물론 만화까지 거론하며 일본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변경성의 특징을 파헤친다. ‘나’에 대해 자신감이 없이 항상 새로운 것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치면서도 세계 표준을 향해 달려나가고, 전통이나 옛 사람의 지혜는 헌신짝처럼 내버리며, 병적이다시피 침착하지 못한 일본인의 성격에서 변경인적인 속성을 끄집어낸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같은 책처럼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틀거리를 던져준다.

저자는 일본인의 변경성이 지닌 강점에도 초점을 맞춘다. 변경인적인 특성에 한계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 한계 안에 일본을 성장시켰던 힘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면서 변경성의 장점 중 하나로 외래의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개방성’에 주목한다. 이와 함께 “현대 일본의 위기는 ‘배우는 힘’의 상실, 즉 변경의 전통을 잃어버린 데 있다”며 “변경성을 부정하지 말고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