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의학 전문 사이트 ‘메디컬트랜스크립션’은 올해 초 암시장의 장기 매매가를 공개했다. 가장 높은 가격으로 표시된 신장은 26만2000달러(약 2억9560만원). 1억7000만원 정도로 알려진 간이 뒤를 이었다. 왜 장기 매매 암시장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이 사이트는 “현재 미국에만 11만3100여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난해 장기기증은 1만4144건, 매일 장기기증을 기다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18명”이라고 밝혔다.

신장을 기증받지 못해 죽는 사람이 미국에서만 매일 10여명에 이르고, 중국 항저우의 신장 밀매자들을 위한 합숙소는 빚을 갚고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려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신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생명이 걸린 일이고, 신장을 팔려는 사람에겐 건강에 별다른 지장 없이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인데 법은 왜 이런 거래를 금지할까. 법은 인간의 상품화나 도덕적 문제를 들어 이런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나 직관에 어긋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법은 왜 부조리한가》의 저자 레오 카츠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석좌교수는 법적인 난제와 모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법학자다. 그는 법의 모순과 부조리함이 근본적으로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경제적, 철학적, 정치적, 심리적인 원인이 아닌 지극히 ‘논리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투표제의 모순’과 ‘법의 모순’은 본질이 같다며 투표제의 모순을 먼저 파헤친다. 투표 제도의 모순은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장 샤를 드 보르다의 연구로 시작됐다. 우리가 민주적이고 공정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다수결 투표제가 사실은 우리의 선호도를 무시하고 엉뚱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모순을 지녔다고 증명했다.

예를 들어 A, B, C 세 후보를 두고 선거를 치를 때 사전 지지도 조사에서 유권자들은 B후보보다 A후보를 더 선호했고, C후보보다는 B후보를 더 선호했다. 이런 결과로 투표에서 A와 C가 맞붙을 경우 A가 당연히 당선될 거라고 예상하지만 다수결 투표 결과 C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카츠 교수는 “법의 제정과 집행도 여러 개의 대안이나 결정 기준을 놓고 순위를 매겨 하나의 대안을 선택하는 종합적인 의사결정 행위이기 때문에 두 개, 세 개의 대안이 등장하면서 완벽한 선택이나 결과는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법이 왜 장기 거래나 대리모 계약처럼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거래를 금지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의사가 1명밖에 없는 응급실에 사고로 다친 부부가 실려온 상황을 예로 든다. 누구를 먼저 치료하느냐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을 때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어떤 이유로 포기하거나 금지해야 하는지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사회철학자 카를 마르크스가 널리 알려진 그의 업적과는 달리 사생활에서는 주변인들에게 범죄와 다름없는 악랄한 행위를 일삼았지만 그것이 왜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없었는가 하는 역사적 사례를 풀어놓는다.
공공도로에서 위험하게 자동차 경주를 벌이다 무고한 운전자를 죽인 사람이 과실치사로 가벼운 판결을 받는 반면, 말기 암으로 늘 안락사를 고민하던 아내를 도와 안락사시킨 남편이 계획 살인으로 엄중한 판결을 받는 경우를 비교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