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NHN 등 잘나가는 대기업을 나와 창업하는 이들을 보면 주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편한 길을 버리고 험한 길을 택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서다. 이들이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해적’의 길을 택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이 나왔다.

《멀리 보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한국경제신문 기자인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 ‘임원기의 인터넷 인사이드’(limwonki.com)에 연재한 내용 중 일부를 보완한 것. 저자는 2010년 2월부터 정보기술(IT) 분야 86개 신생기업 창업자들을 만나 ‘한국의 스타트업’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언제 책으로 나오느냐”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관심이 컸다.

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인들은 IT 바닥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인물들이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이진수 포도트리 사장,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장병규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 이정웅 선데이토즈 사장, 이택경 프라머 대표,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사장…. 이들이 들려주는 벤처 창업 얘기는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노정석 대표는 회사원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고생 모르고 컸다. 그러나 1996년 ‘KAIST와 포항공대 해킹 싸움’을 주도해 감옥에 갔고 잃을 게 없는 상황에서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인젠 공동창업, 젠터스 창업, SK텔레콤 입사, 태터앤컴퍼니 창업, 구글에 매각하고 구글 입사, 아블라컴퍼니 창업….

노 대표는 창업으로 성공해 ‘이젠 놀고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가 됐을 때 다시 창업했다. 다들 입사하고 싶어하는 SK텔레콤과 구글을 뛰쳐나와 또 창업했다. 그는 예비창업자들에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빨리 하라”고 권한다. “큰 일을 하려면 한참 동안 남들이 바보라고 할 만한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진수 사장은 프리챌이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했을 때 마케팅을 총괄했고 IBM과 NHN을 거쳐 2010년 포도트리를 창업했다. NHN에서도 잘나갔으나 아이폰이 뜨는 걸 보고 뛰쳐나왔다. 당시 대기업 임원이던 대학 후배에게 다짜고짜 “창업하자”고 하자 1초 만에 “OK” 했다는 걸 보면 ‘해적’끼리는 통하는 모양이다.

벤처 창업에 대한 그의 철학은 의미심장하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500억원 벌었다고 500만원짜리 햄버거 먹는 거 아니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싶고 강남 10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절대 벤처 하지 마라. … 벤처 하겠다는 사람들은 우주에 가보겠다고 용기나 객기를 부리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해군’을 마다하고 ‘해적’의 길을 택한 벤처 창업가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어진다. 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고 맛깔나게 글로 써낸 저자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