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JAL)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최고 직장이었다. 그러나 방만한 경영과 경기침체 여파로 경영난에 빠지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쓰러져 가던 JAL의 구원투수로 나선 사람은 80세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창업주. 교세라를 세계적 회사로 키운 ‘경영의 신’ 이나모리는 JAL 사령탑에 오른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수익은 늘리고 비용은 줄인다’는 경영의 기본 원칙을 강조했다. 2년 후인 2011년 JAL은 상반기 매출 5998억엔, 순익 974억엔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그의 성공은 ‘일본식 경영’의 경쟁력을 다시 입증했다.

《일본기업 재발견》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본 기업과 일본 경제의 비결을 알려준다. 한국경제신문 일본특파원 출신인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변신을 꾀하고 있는지 알려주며 그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도요타의 부활은 제조업 강국 일본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도요타는 미국에서의 대량 리콜 사태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 공급 차질로 큰 시련을 겪었다. 2008년 세계 자동차업계 정상에 올라선 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해외 공장을 직접 챙기며 품질관리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낸 도요타의 생산과 판매는 올해부터 예전처럼 회복됐다.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술력, 60년 무분규로 상징되는 노사공동체 정신, 4대째 이어져온 오너 가문의 리더십이 도요타의 부활을 이끌었다.

다른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의 대표주자인 파나소닉은 지난 2월 말 도쿄 사옥을 팔기로 했다. 자회사인 산요전기의 본사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기업이 무너지고 한국 기업들이 공격적 투자에 나서면서 일본 반도체 장비회사들은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세계 최대 메모리칩 테스트업체인 일본 어드밴테스트는 400억원을 투자해 천안에 공장을 짓고 있다. 도쿄일렉트론, 히타치국제전기도 한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저자는 “일본 기업들이 대지진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계시장 공략에 다시 나서고 있다”며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업체들도 다시 신발끈을 조여야 할 때”라고 말한다.

칼럼니스트이자 아시아 전문가인 이먼 핑글턴은 지난 2월 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일본의 실패는 신화’라는 글에서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용어 자체가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같은 기간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별다른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고, 거품 붕괴 이후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던 일본 정부의 대응전략도 재평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2010년 196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보유액은 2011년 말 기준 1조2958억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실업률도 4%대 초반으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의 제조업은 독일과 함께 세계 최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과거는 실패가 아닌 성공의 스토리로 읽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