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금융 세계 3위이자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가 선박금융과 상업용 부동산 대출 등 2개 핵심 사업부문을 전격 포기했다. 재정위기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독일 대형 은행마저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자구책을 단행한 것이다.

마르틴 블레싱 코메르츠방크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선박금융과 상업용 부동산 대출 사업부문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코메르츠방크의 자산은 6618억유로(약 957조원)로 도이체방크(자산 2조1640억유로)에 이어 독일 2위다. 주요 사업은 상업은행 및 소매은행, 부동산 담보대출, 선박대출이며 선박금융 부문 자산 규모는 연 250억달러(약 28조9000억원)다. 코메르츠방크는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코메르츠방크가 핵심 사업 포기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유로존 재정위기가 3년 이상 이어지면서 경기에 민감한 선박금융과 부동산 대출이 큰 손실을 본 탓이 컸다. 글로벌 해운 강국 그리스의 해운산업이 재정위기 여파로 흔들리면서 신규 선박 발주가 크게 줄었고 이것이 글로벌 선박금융 3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에 직격탄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재정 불량국인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기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대거 부실해졌다. 코메르츠방크의 부동산 대출사업 부문인 유로하이포는 최근 몇 년간 상업용 부동산 대출 영업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측은 조만간 유로하이포를 일반 소매금융 부문에 통합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연내에 마친다는 계획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젤Ⅲ’ 적용 등 금융 규제가 강해지면서 이들 사업 부문의 핵심 자본까지 크게 확충해야 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정부에서 구제금융(182억유로)을 받았던 코메르츠방크로선 신규 자금 확보가 원활치 않았고 결국 사업부문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독일 경제일간지 한델스블라트는 “코메르츠방크가 생존하기 위해 핵심 사업부문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비행기에서 탈출해 낙하산 줄을 펴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메르츠방크의 이번 조치로 글로벌 해운산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자칫 글로벌 해운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4000여대 규모 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운영하고 있는 수출대국 독일의 무역업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독일선주협회(VDR)는 “코메르츠방크가 위기를 촉발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민흥식 수출입은행 선박금융부장은 “최근 무디스가 코메르츠방크의 신용등급을 A2에서 A3로 강등하면서 리스크가 큰 선박금융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