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퇴출시키는 방안이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장들이 앞다퉈 그동안 금기시됐던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경제대국이자 ‘물주(物主)’인 독일은 유럽 각국에 ‘그리시트(Greece+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이뤄질 경우 청산비용을 계산한 문건을 회람시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최종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유로존 붕괴와 유로화의 죽음을 맞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스 퇴출 군불 때기

유럽중앙은행(ECB) 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장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이 각 정당 대표를 소집해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마지막 협의를 벌였지만 실패로 끝나자 “(긴축을 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리스를 쫓아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뤼크 코엔 벨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13일 “그리스는 필요할 경우 유로존과 원만하게 이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호노한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 주말 “그리스의 퇴출은 바람직하진 않지만 치명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퇴출비용 3500억유로?

유럽 국가 중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가장 많이 지원한 독일은 본격적인 ‘플랜B(그리스의 유로존 퇴출)’ 실행 준비작업에 나섰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독일 일간 라이니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탈퇴해도 다른 나라로 재정위기가 전염될 우려는 줄어들었다”고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독일 언론들은 그리스 퇴출시 구체적인 ‘매몰비용’까지 계산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1·2차 그리스 구제금융 등으로 독일이 투입한 자금은 최소 860억유로로 그리스 퇴출시 독일의 손실 규모는 1000억유로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의 지난해 말 현재 ECB 지분(28.6%)을 고려할 경우 그리스 퇴출에 따른 유럽 전체의 손실비용은 3500억유로(518조원) 이상으로 커진다는 계산이다. 민간부문 손실까지 추가할 경우 피해액은 크게 늘어난다.

텔레그래프는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이 회람한 독일 측 계획안에 따르면 그리스가 드라크마화 체제로 복귀할 경우 발생하는 ‘청소비용’을 유로존뿐만 아니라 EU 27개 회원국이 분담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15일 독일·프랑스 정상회담 주목

글로벌 신용평가업체 피치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유로존 전체 회원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할 것”이라며 “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즉시 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위기감을 키웠다.

그리스 퇴출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유럽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독일 집권 우파연정은 13일(현지시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15일엔 성장협약을 내세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하고 곧바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난다. 베누아 아몽 프랑스 사회당 대변인은 “독일 총리 혼자서 유럽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며 긴축정책 고수를 주장하는 독일과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유로존 운명을 둘러싼 불안감이 높아지자 14일 유럽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스페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 초반 6.352%로 치솟았다. 지난해 12월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요국 주식시장은 장중 2%대의 급락세를 나타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30 지수는 2.2%,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40 지수는 2.5% 각각 떨어졌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