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한 사람의 역사요, 세상과 소통하는 아날로그적 열쇠다. 엄마의 손과 맞닿으며 처음 세상을 접하고, 마지막에는 자식의 손을 어루만지며 생을 마감한다. 손은 항상 묵묵히, 조용히, 그리고 진솔하게 그 사람의 삶을 담을 뿐이다.”

《당신의 손은 무엇을 꿈꾸는가》의 저자 김용훈 씨의 손에 대한 생각이다. 그에게 손은 ‘한 인물의 생을 담고 흐르는 강물’이다. 오랜 세월 해온 소중한 일의 과정은 우리 손에 그대로 새겨진다. 저자는 손에 담겨 있는 인생들이 궁금해 2년간 100명을 만나 그들의 손을 책에 옮겼다. 평범한 시민부터 유명인사들의 일과 인생 이야기다.

40여년 쉼 없이 사랑의 손짓을 이어온 사람이 있다. 수화 통역사 이경례 씨. 그의 손은 단순히 농아인을 돕기 위한 손이 아니다. 뇌보다는 마음과 연결된 듯한 따뜻한 손이다. 그의 친언니는 청각장애자였고 이씨는 언니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둘은 잠도 안 자고 수화로 대화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가 불을 꺼버렸지만 둘은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대화했다.

이런 사랑을 바탕으로 그는 수화 통역사가 됐다. 가족의 입장에서 통역을 하기에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닌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한번 그를 만난 농아인은 무슨 일이든 꼭 그가 통역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아인들 덕분에 출세했지요. 내 능력으로 감히 서볼 수도 없을 대학교 강단에 서고, 여러 공공기관에 두루 다니며 강의도 해 보고.”

나머지 99인의 손도 모두 아름답다. 스마트폰으로 어렵지 않게 안부를 묻는 요즘이지만 예전엔 달랐다. 먼발치에선 처녀들이 부모님이 볼세라 연애편지를 기다렸고 노모는 군대 간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집배원 이상열 씨의 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손이었다.

20년 동안 마리오네트 인형을 만들고 극을 연출해온 제작자 옥종근 씨의 손은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다. 바삐 움직이는 손이 나무토막을 깎고 뚫고 다듬는다. 손이 파이고 까지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에게 인형 제작은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는 그렇게 만든 인형들을 어루만지며 사람처럼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이들 외에도 위조지폐 감식가, 무속인, 형사, 심마니부터 야구선수, 바둑기사, 시인 등에 이르는 사람들의 손과 인생이 소개된다.

이 책에서 99번째로 소개되는 건 김비취라는 이름의 갓 태어난 아기 손이다. 저자는 그 손을 ‘새벽 호숫가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의 느낌’이라고 말한다. 순수하고 영롱한 기운이 세상과 맞닿을 채비를 하는. 앞으로 이 아기의 손에는 어떤 물건이 쥐어질까. 펜, 꽃, 칼, 돈 등 무궁무진하다. 맞닿을 타인의 손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보드랍고 작은 아기의 손이 자라면서 파이고 때로는 먼지도 묻겠지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손에 따뜻한 사랑이 함께하길 기도한다면서.

마지막 100번째 손은 ‘당신의 손’이다. “기억나세요? 영원할 것 같던 행복의 순간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궂은 날들…. 당신의 손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또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까?”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