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생존을 고민하는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심리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 개혁군주 정조는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그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심리의 비결은 경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조는 ‘역사상 제일가는 성군(聖君)이 되겠다’는 말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유년기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암살 기도와 역모가 반복되는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다. 위기상황을 장기간 겪게 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마음의 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조는 놀랍게도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하며 개혁정치를 강력히 추진했다.


#부하의 잘못도 ‘내 탓이오’

정조는 자기반성 능력이 뛰어났다. 부하가 잘못을 해도 남 탓을 하지 않았다. 나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면서 반성했다. 홍국영 사건이 한 예다. 왕이 된 정조는 세손 시절과 즉위 초에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홍국영에게 의존했다. 홍국영은 지략과 수완은 뛰어났지만 사심에 찌든 인물이어서 정조의 개혁파트너가 될 수 없었다. 여동생인 원빈 홍씨가 사망하자 왕비를 의심하며 만행을 저질렀고, 권력을 휘두르며 후계자 선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홍국영이 금지선을 넘어서자 정조는 그의 벼슬과 재산을 빼앗고 시골로 쫓아냈다. 신하들은 그를 죽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정조는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럽고 괴로워서 차라리 죽고 싶다. 모두 내가 착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오히려 누구를 허물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남 탓을 하면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부정적인 감정이 싹트고, 내 탓을 하면 자기반성과 문제 상황에 대한 성찰을 통해 리더 스스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양심도 분노도 직접 통제

정조는 도덕적 자부심이 강했다. 양심에 거스르는 짓은 하지 않고, 실수를 범하더라도 철저히 반성하는 성향으로 인해 도덕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그의 신념은 역모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권력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이 됐다. 정조는 기록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했다.

정조가 기록을 철저히 남기려고 했던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인생과 정치활동을 떳떳하게 생각했다는 증거다.

정조는 한편으로 뛰어난 자기 통제력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수이자 정치개혁의 주요한 걸림돌인 구선복에 대한 분노감정을 무려 10년간이나 통제하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기록에 의하면 정조는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다는 표현도 대수롭지 않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가 병권을 쥐고 있고 무리가 많아 갑자기 처치할 수 없어 다년간 괴로움을 참고 있다가 끝내 법을 적용했다”고 할 만큼 자기 통제력을 보였다. 자기 통제가 강한 리더일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내하고 화를 삭일 수 있는 절제력 또한 남다르다.

#리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정조의 자기반성 능력과 통제력은 리더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사항이다. 최근 ‘세기의 리더들은 모두 정서지능형 인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조명 받고 있는 감성 역량이기도 하다. 자녀는 물론 회사의 젊은 인재들을 미래의 리더로 키우고 싶다면 다음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정조는 사람의 선한 본성을 굳게 믿고 ‘사람은 좋게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고수했으며, 대인신뢰감이 강했다. 긍정적이고 안정된 정서 상태를 갖는 것은 부모의 영향이 좌우한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 건강한 관계를 맺었던 아이는 자연스레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정조는 사회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강했다. 여기에는 아버지 관계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훌륭한 존재인 아버지가 밖에만 나갔다 오면 세상을 욕하면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아이는 ‘바깥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기에 아버지가 저럴까’ 싶을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아이의 무의식에는 사회에 대한 공포감이 쌓인다.

#리더의 스트레스는 아래로 흐른다

이런 점에서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사회불안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생활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조직의 리더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사람이 남 탓만 한다면 조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대물림하는 셈이다. 리더들의 자녀교육, 인재교육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자신의 모습이 교과서인 셈이다.

커다란 시련을 용감하게 이겨내 비범한 인물이 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그것이 가능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경영의 대업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리더 자신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정조를 통해 느껴보기 바란다. 그리고 자녀를 훌륭히 성장시키고 기업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키워내는 일에서도 그들의 안정된 심리상태를 만드는 것 또한 리더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리=이주영 한경아카데미 연구원 opeia@hankyung.com



김태형 <심리전문가 jpsythkim@naver.com>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임상심리학 석사
△저서 ‘부모-나 관계의 비밀’ ‘성격과 심리학’ ‘스키너의 심리상자 닫기’ ‘베토벤 심리상담 보고서’ ‘새로 쓴 심리학’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 ‘심리학 삼국지를 말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