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스크린이 접수한 문학
교보문고의 최신 베스트셀러 30위 안에 오른 소설은 5편. 이 가운데 한국 문학은 영화 개봉을 앞둔 박범신의 《은교》(6위)가 유일하다. 나머지 네 편은 외국 작품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쓴 《화차》(16위)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17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3위),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27위) 등이다. 《은교》를 비롯해 《화차》《헝거게임》등 세 편이 ‘스크린셀러’이고,《빅 픽처》는 영상적인 심리 묘사극으로 출간된 지 2년 가까이 됐다.《은교》도 2년 전에 나왔으니 올 들어 주목 받은 국내 소설은 TV드라마화된 《해를 품은 달》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해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정유정과 김애란이《7년의 밤》과《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젊은 작가의 힘을 보여주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지만, 판매를 주도한 것은 역시 영화로 화제를 모은《도가니》와 미국에서 인기를 끈《엄마를 부탁해》였다. 작년 교보문고 전체 판매량에서《7년의 밤》은 22위,《두근두근 내 인생》이 25위에 그친 데 비해《도가니》는 5위로 치솟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영상시대의 독자 눈높이에 한국 소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소설의 주요 소비층이 스마트폰 등 영상에 익숙한 독자들인데, 한국 문학이 이런 독자 변화에 발맞추려는 새로운 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7년의 밤》이나《두근두근 내 인생》과 같은 작품이 영상적 서사구조를 통해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정작 이들 작품에 대한 문학계의 반응이 냉랭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네스코 지정 ‘책의 날’인 23일 전국 곳곳에서 책 관련 행사가 펼쳐졌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문학이 지나치게 사회현상을 좇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독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 또한 문학이다. 모든 창작 콘텐츠의 원천인 문학이 좀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고단한 세상에 희망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한신 문화부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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