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덕동에서 소아과 의원을 운영 중인 한모 원장(56)은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하루 평균 30여명의 환자를 진료해 월평균 1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300만원이 채 안 된다. 자녀 과외비 등에 지출하고 나면 회비 걱정 탓에 동료의사 모임에도 잘 나갈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최근 간호사마저 내보내고 ‘1인 2역’을 하고 있다. 한 원장은 이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느니 차라리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전체 의료기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동네 의원(지난 3월 말 현재 2만7837개)이 고사 위기에 몰려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작년 6~8월 병상 수 29개 이하 1차 의료기관 1031개소를 대상으로 ‘2010년 병원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의원급 의료기관의 평균 진료시간은 전년에 비해 1시간 줄어든 50.1시간이었고 환자 수도 하루 평균 4명 감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의원 1곳당 하루 평균 내원 환자 수는 2009년 71.6명에서 2010년 63.4명으로, 의사 1명당 환자 수도 57.5명에서 53.6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체 의료기관 진료비 중 의원급 점유율은 2000년 35.7%(4조6851억원)에서 2010년 22.8%(8조9900억원)로 10년 동안 12.9%포인트나 급감했다.

동네의원들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의사 수가 늘고 있는 데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빚을 얻어서라도 무리하게 개원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원 의사 10명 가운데 7명(72.3%)은 병원을 열 때 개원자금으로 부채를 떠안은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부채는 3억5079만원이었다.

개원 자금이 많이 들어간 진료과는 산부인과(13억9397만원), 안과(11억9305만원), 영상의학과·핵의학과 등의 기타방사선과(9억298만원) 순이었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개업한 젊은 개원의들이 경영난으로 이자를 갚는 데 허덕였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최근 5년새 의원급 의료기관의 대출금액은 5조원을 넘어섰다. 의원들은 자구책으로 주말에 늦게까지 진료를 하고 평일에도 오후 8~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한편 의원의 평균 매출은 4억4417만원, 원장의 순이익은 평균 1억2224만원이었다. 5년 전에 비해 평균 5~10%가량 감소했다. 진료과별로는 척추관절을 다루는 정형외과가 연간 6억9721만원을 벌어 가장 수입이 많았고 이어 안과 6억원, 산부인과 4억3698만원, 내과 4억3449만원 등의 순이었다.

임금자 의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동네병원들이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환자를 유인하기 위해 빚을 내 1억원짜리 내시경을 도입하는 등 울며 겨자 먹기식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동네 의원을 들르지 않고는 대형병원에 갈 수 없도록 법령 정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