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빨리 와 보세요. 이란 가는 비행기 표 알아봐야겠어요!”

2008년 6월 인천 검암동의 차량용 머플러파이프(배기계용 파이프) 제조업체 세우스틸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홍세모 과장(28)이 아버지 홍성진 대표(50)를 불렀다. 이란의 국영 차부품업체인 KEM 관계자가 제품에 관심이 있다며 이란 현지 미팅을 이메일로 제의해온 것. 그 해 4월 입사한 홍 과장이 몇 달간 인터넷을 뒤져 해외 거래처를 찾고 하루 수십통씩 영어 이메일을 주고 받던 중 첫 희소식이었다.

홍 대표는 아들과 함께 바로 이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협상 끝에 10만달러 규모의 주문을 따왔다. 홍 대표는 “지난해 이 회사에만 3000만달러 넘는 물량을 실어보냈다”며 “정보기술(IT)에 친숙하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신세대 아들 덕에 해외 사업이 크게 성장 중”이라고 흐뭇해했다.

○아픈 아들 위해 맨손으로 시작한 아버지

홍 대표는 5년 전인 2007년 세우스틸을 창립했다. 그러나 그 뿌리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하고 처자식을 얻은 홍 대표는 1980년대 중소 철강 회사에서 국내 유통 일을 했다. 하지만 1990년 회사가 문을 닫으며 한순간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홍 대표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해 막막했지만 희귀 피부병을 앓던 외아들 세모의 병원비 걱정에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해 아들의 이름을 딴 ‘세모철강’을 세우고, 동진제강(현 동부제철) 등 대기업 철강 제품을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가방끈은 짧았지만 유통사업엔 수완이 좋았다. 그냥 주문을 받는 게 아니라 수요처를 방문해 꼼꼼히 뭐가 필요한지 점검한 후 현장에 맞는 제품을 공급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거래처가 금세 늘었고, 1990년대 중반쯤엔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거래처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사업은 다시 어려워졌다. 이때 홍 대표를 돕겠다고 나선 것은 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 과장이었다. 홍 과장은 “당장 일을 돕고 싶었지만 기초를 먼저 다지기로 했다”며 “이듬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회계와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영어와 글로벌 경영 감각을 익혔다”고 말했다.

홍 대표도 아들을 기다리며 이를 악물고 사업에 집중했다. 싱가포르 중국 등 해외 거래선을 새로 뚫으며 회사를 일으켰고, 홍 과장이 군 복무 중이던 2007년에는 세우스틸을 창립하고 전북 김제의 공장을 사들여 신사업에도 진출한다.

국내에 관련사가 거의 없던 머플러파이프 제조였다. 홍 대표는 “품질을 꼼꼼히 챙기다 보니 제품을 내놓자마자 거래처들이 만족스러워했다”며 “세모철강보다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아래 홍 과장을 세우스틸에 입사시키고 이 사업에 주력해왔다”고 말했다.

○글로벌 사업 날개 단 유학파 아들

오랜 유통 노하우를 가진 홍 대표, 영어 실력과 글로벌 감각을 갖춘 홍 과장의 ‘양강 체제’로 회사는 계속 성장세다. 2010년 100억원 내외였던 매출은 지난해 498억원으로 5배 가까이 뛰었다. 이 중 98%를 해외에서 올렸다. 홍 대표가 국내에서 자재 구매와 품질 관리를 이끌고, 홍 과장은 해외 거래처를 직접 발굴하고 협상을 이끌어내는 등 각자 전문 분야에 집중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세우스틸은 매출 100억원 규모의 세모철강을 올해 흡수ㆍ합병할 계획이다. 합병 후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홍 과장은 한 달에 2주씩 해외에 머물며 대형 거래처를 관리하는 한편, 미국 진출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나이로는 대기업 말단 사원 급인 그지만 비전은 누구보다 크다. “언젠가 미국 포천지가 선정하는 500대 글로벌 기업에 이름을 올려 놓을 겁니다. 아버지와 제가 양 날개로 함께 한다면 헛된 꿈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인천=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