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엘피다 인수전에도 뛰어들었고, SK그룹과의 시너지를 통해 세계적인 종합반도체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비전도 마련했다.

이 작업을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54)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권 사장은 19일 한국경제신문 BIZ Insight와의 인터뷰에서 엘피다 인수전 참여와 관련, “반도체업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방관자로 있기보다는 직접 참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조건만 맞는다면 엘피다를 인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여전히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신다고요.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말 중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난달 26일 SK하이닉스 출범식 때도 이 말을 했어요. 지금 SK하이닉스는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말고, 바보처럼 우직하게 정진해야 할 때입니다. SK그룹의 일원이 된 것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 최고가 될 때까지 뛰자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이닉스가 새 주인을 만나는 데 10년 이상 걸렸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하이닉스에 희망이 없다며 모두가 매각을 해야한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결국 2002년 4월 미국 마이크론에 팔려고 했죠.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습니다. 다행히 이사회에서 부결됐습니다. 이후 전 임직원이 똘똘 뭉쳐 하이닉스를 지켜냈습니다. 그랬던 회사가 이젠 엘피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회사 위상이 높아지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이죠. 모두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하이닉스를 믿어줬습니다. 항상 애정을 갖고 응원해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엘피다 인수전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엘피다가 D램 부문에서 세계 3위인 만큼 이 회사의 구조조정 방향에 따라 반도체 업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우리도 방관자로 있기보다는 직접 참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엘피다 인수가 회사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시장에서는 엘피다 인수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인데요.

“인수 조건만 우호적이라면 못할 이유가 없죠. 앞으로 엘피다가 회생할 수 있을 지를 따져보고, 엘피다를 인수해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계획입니다. 실사 결과 시너지가 난다는 결론이 나면 후속 조치를 진행할 겁니다.”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까.

“SK 가족이 된 뒤 많은 부분이 좋아졌지만, 가장 큰 건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털어버렸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치킨게임’으로 불리는 반도체 경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데에만 급급했죠. 이제는 역량 있는 대주주를 만났으니 적극적인 성장전략을 추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모바일 분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은 국내 최고 통신사업자이고, SK하이닉스는 모바일기기 업체들과 협력관계에 있죠. 두 회사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면 모바일 생태계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SK그룹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성장동력을 찾았고, SK하이닉스는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광활한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대표도 맡았는데요.

“오너가 책임감을 갖고 회사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SK그룹을 이끌면서 축적한 경험과 역량이 SK하이닉스 경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최 회장이 회사를 키우겠다고 다짐해서 회사 임직원들이 무척 고무돼 있습니다. 국내외 고객들도 많은 신뢰를 보내고 있고요.”

▷아직 실적이 좋지 않습니다. 언제쯤 턴어라운드할 수 있다고 봅니까.

“작년 3분기부터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지난 1분기에도 실적이 급격히 좋아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2분기부터 시황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투자계획을 4조2000억원으로 제시했는데, 아직까진 이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시황이나 환율 등에 따라 조정할 여지는 있습니다. 보유 현금은 충분한 편입니다. 작년 말까지 1조9000억원을 갖고 있었고, 지난 2월 SK텔레콤으로부터 신주 인수대금 2조3000억원을 받았습니다. 자세한 현금 보유 규모는 오는 26일 1분기 실적 발표 때 공개하겠습니다.”

▷D램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제품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바꿀 생각입니까.

“그동안 일반 PC용 D램보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모바일 D램과 서버용 D램 등의 비중을 늘려왔습니다. 이런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2007년만 해도 전체 매출의 40%대였지만 지금은 70%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낸드플래시 비중도 2010년 18%에 불과했지만 작년 4분기에 30%로 늘렸습니다. 앞으로는 모바일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 카메라센서(CMOS) 같은 모바일 솔루션 비중이 지금은 40%인데 2016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라인 증설이 필수적일 텐데요.

“5월이면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청주공장 M12라인 공사가 마무리됩니다. 300㎜ 웨이퍼 생산능력이 월 13만장에서 17만장으로 늘어나게 되죠. 그리고 D램만 만드는 중국 우시 공장에서도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도 시황에 따라 라인을 증설할 수 있습니다.”

▷신규사업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습니까.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PC램과 Re램, STT-M램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강화할 계획입니다. 이미 카메라센서와 LCD 드라이브집적회로(LDI)로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인 시간표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시스템반도체를 키워 종합반도체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꿈입니다. 임직원뿐만 아니라 주주, 고객, 협력업체, 국가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최대의 행복을 나누어 주는 회사로 거듭 나겠습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