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편해서 네이버 왔다는 직원에 억장 무너져"
인터넷 검색 분야에서 점유율 70%가 넘는 포털업계 강자인 NHN(네이버·naver.com)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오픈마켓(샵N)을 만들어 다른 사이트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거나 ‘골목상권까지 넘보고 있다’는 등 NHN의 공세를 다룬 기사들이 주로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는 NHN의 모바일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메신저 사업에서 카카오에 밀리는 등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밑에서 진행되는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상이 추락한 일본 소니와 닌텐도, 핀란드 노키아의 위기가 NHN에도 어느날 다가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NHN, 치열함이 없어졌다”

‘NHN 위기론’을 제기한 사람은 NHN 창업자로 최고전략책임자(CSO)를 겸하고 있는 이해진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지난달 사내 강연에서 “사내 게시판에서 ‘삼성에서 일하다가 편하게 지내려고 NHN으로 왔다’는 글을 보고 너무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NHN을 ‘동네 조기축구 동호회’쯤으로 알고 다니는 직원이 적지 않다”고 질타했다.

NHN이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로 정한 것은 전날 야간 근무를 새벽까지 하는 직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사내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최첨단 환기 시스템을 도입했고 100만원이 넘는 의자도 제공했다. 하지만 요즘은 오후 7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출근 시간을 늦추고 사무 환경을 개선한 것은 절박하고 치열하게 일하는 직원들을 위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NHN은 노동 강도가 가장 약한 곳”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요즘 NHN은 게임과 서비스 출시도 늦고 콘텐츠마저 ‘엣지(독창성)’가 없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매일 아침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과 경쟁사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았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목선 10척밖에 없다"

이 의장은 “국내 인터넷 검색 시장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해외 기업에 시장을 내주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검색 업체들이 정부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NHN과 처지가 다르다고 토로했다. NHN은 자체 경쟁력으로 생존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IT산업은 변화가 심하고 경쟁이 매우 치열한 곳”이라며 “전 세계의 인재가 몰리고 현금 보유액도 많은 구글, 애플과 상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적의 군대가 철갑선 300척이라면 우리는 목선 10척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유했다.
이해진 "편해서 네이버 왔다는 직원에 억장 무너져"
○“혁신은 노력의 산물”

이 의장은 ”혁신은 천재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구글, 페이스북 등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회사들은 ‘퍼스트무버’라기보다는 이미 있는 아이디어에 치열하게 매달려 고객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이전에도 야후, 마이스페이스 등 그 분야의 강자는 있었다.

글로벌 IT 강자들의 몰락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소니 노키아 닌텐도 등 퍼스트무버들이 꺾이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큰 회사도 무너지고 한순간 깜박하면 날아갈 수 있는 곳이 인터넷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집중과 속도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이용자의 요구를 악착같이 파악해 독하게 추진하는 기업이 결국 이겼다”며 “NHN에는 혁신이 더 이상 없고 독점적 지위로 경쟁사를 압도해 1등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IT산업 특성상 이용자를 배려하는 혁신 없이는 계속 1위를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