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삶의 여유 잃어버렸다면 '공감 능력' 낙제점
2007년 1월12일 오전 8시, 한 길거리 음악가가 워싱턴DC 랑팡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1000여명의 출근길 시민들은 대부분 관심조차 두지 않았고, 몇 사람만이 걸음의 속도를 늦췄으며, 7분 정도가 지났을 때 한 중년 여인이 모자에 1달러를 넣었다. 1시간 정도의 연주가 끝났을 때 지켜보던 사람은 하나 없었고 모자에는 32달러17센트가 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신문을 펼쳐든 시민들은 깜짝 놀랐을 것 같다. 그 연주가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고, 그의 지하철 연주는 워싱턴포스트에서 꾸민 실험이었던 것. 통상 그의 공연을 보려면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하는 게 보통이다. 그가 지하철역에서 켰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자그마치 40억원짜리였다. 하지만 단지 몇 사람만 1달러의 공감을 표시했을 뿐 대부분의 워싱턴 시민들은 그런 그를 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정녕 외계인이 와야만 하는 것일까.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시리즈 ‘V’에서처럼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야 지구수비대라도 결성해 일사불란하게 ‘하나된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공감의 진화》는 “우리와 타인을 가르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이 오늘날 인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삶의 여유가 사라진 현대인들의 ‘공감의 부재’를 지적한다. 공동 저자인 생물학자 폴 에얼릭과 심리학자 로버트 온스타인은 역사와 생물학, 뇌과학, 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인류의 무리짓기 본능과 그로 인해 파생하는 영향을 들여다본다.

[책마을] 삶의 여유 잃어버렸다면 '공감 능력' 낙제점
저자들은 인간이 가진 공감과 협동 능력 덕분에 나약한 생물종에 불과했던 인류가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하고 지배적인 생물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지금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배타적 우리’라는 감성은 자연과 흉포한 동물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훌륭한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밖으로는 ‘타인’을 만들어 그들과 갈등하고 대립해왔다는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갈등 양상을 보면 허황된 제안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70억 지구인 모두가 하나가 되는 방법을 찾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먼저 타인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과는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동정이 아닌 공감해야 한다는 것.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심지어 근친혼 문화라도 단지 차이일 뿐이지 공격하고 타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각종 폭력과 그로 인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절대신을 섬기면서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대교도 그 율법을 따름으로써 바람직한 사후의 삶을 누릴 것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도 바울에 이르러 다른 신앙에 대한 불관용과 함께 구체화한 것일 뿐이다. 십자군 전쟁, 이라크 침공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네 이웃을 사랑한다면’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너무나도 황당한 이유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다.

‘이단’이라는 용어도 조직화한 종교단체들이 그 지도자의 지배력과 권력을 확장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극단적인 배타성의 상징이라 할 나치의 유대인 학살, 잔혹한 테러리스트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