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3가 뭡네까" 시장경제 배우는 평양 엘리트들
“평양의 시장경제 학습 열기는 그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조선교류(Choson Exchange)’ 공보관은 28일 기자와 만나 지난 13~14일 이틀간 평양에서 열린 ‘민간 대출과 자산·부채 관리’ 워크숍 내용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조선교류’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대북민간단체로, 상업법 경제정책 등 분야에서 북측 인사들을 대상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브라하미안 공보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100일을 넘긴 지금, 북한의 신진엘리트들 사이에 시장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평양에서 시장경제체제 관련 워크숍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교류와 북측이 워크숍 개최와 주제에 합의한 직후 김 위원장 사망이 발표되면서 한때 성사가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은 김 위원장 사망 발표 1주일여 만에 “워크숍을 예정대로 진행하자”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조선교류 측은 전했다.

북측에서는 정부 관료 및 은행, 국가합영기업 직원 등 30대 초·중반의 엘리트 30명이 참가했다. 아브라하미안 공보관은 “젊은 세대가 국제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고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어 향후 정책 변화를 이끌 힘이 크다고 판단해 참석자를 30대로 한정했다”며 “수업 집중도를 고려해 20명 안팎의 참가를 계획했으나 희망 인원이 많아 참가자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강의는 미국, 유럽, 싱가포르 출신의 변호사와 투자은행 직원, 펀드매니저 등 전문가 4명이 맡았다. 강연 과목은 북측 요청에 따라 상업대출, 국제금융 체계, 위기관리 시스템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 나진선봉 경제특구, 황금평 등 중국 자본을 끌어들인 새로운 사업이 늘어나면서 국제금융제도, 분쟁해결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수업과 토론은 모두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됐다. 북측 참가자들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했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강사로 나섰던 한 관계자는 “참석자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바젤3’을 비롯한 국제 규제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틀간의 워크숍 후에도 참석자들은 시장경제에 대한 강한 학습의욕을 보였다. 피드백 조사에서 한 참석자는 “금융체제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고 밝혔고 또 다른 참석자는 “1~2주일 동안 경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원한다”고 요청했다. 조선교류는 오는 7월 재정개혁과 세제개혁을 주제로 한 후속 워크숍을 평양에서 열 계획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