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시장을 창출해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을 만들자는 가치혁신 이론이 세상에 알려진 지도 어언 10여년이 됐다. 1990년대 말부터 순차적으로 발표된 가치혁신 논문들은 유럽의 전략 학계를 시작으로 선풍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때마침 불어닥친 벤처 열풍과 맞물려 신시장·신사업 개척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의 중심에 서는 이론이 됐다. 2005년 ‘블루오션’이라는 제목의 단행본 출간을 계기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킨 덕분일까. 새로운 사업전략을 구상하는 많은 회사들의 생각이 이전에는 ‘어떻게 하면 경쟁자를 누를 수 있을까’라는 전략의 틀에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경쟁이 없는 신사업을 구상해낼 수 있을까’ 하는 혁신적 전략의 틀로 이동하고 있다.

진정한 기업가는 위험 감내아닌 최소화에 더 역점

# 신시장 개척은 벤처회사들의 몫?

세계가 벤처 열풍에 휩싸이고 가치혁신 전략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 블루오션 전략은 벤처회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컸다.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기존 회사보다는 태생적으로 모험을 하게끔 돼 있는 벤처회사들에 가치혁신 전략이 유용하다는 인식이었다. 신시장 개척은 벤처회사들만의 몫이라는 잘못된 주장과도 연결돼 있다. 실제로 벤처 열풍 이후 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존 회사들이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세상의 틀을 바꾸는 제품 출시에 성공, 천문학적인 회사 가치를 인정받은 뉴스들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의 뇌리에 더욱 각인된 것 같다. 그러나 주변을 차분히 돌아보면 이런 벤처회사만이 신시장·신제품을 개척한 것은 아니다. 전기자동차 스마트폰 디지털TV 무선인터넷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혁신제품은 벤처회사가 아닌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이 만든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기존 회사가 벤처회사보다 더 많은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논점은 기존 회사들이 혁신적 신시장 개척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쟁자를 반 발짝 앞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점진적 개선에만 치중하다가는 큰 이익을 낼 수 없으며, 어느 날 갑자기 뒤처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혁신보다 이전에 나온 파괴적 혁신 같은 여러 혁신 전략들도 이미 이런 현상들을 예측하고 있다. 요즘은 창의적 시장 창출이 어느 회사에나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한다. 가치혁신 이론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다.

# 블루오션 개척, 굴뚝기업이 더 많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로 신기술 개발을 든다.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R&D) 투자가 대부분 기술개발 자체에 투자하고 있는 현실은 이런 인식과 틀을 같이하는 현상이다. 신기술 개발은 더욱 다양한 비즈니스와 더 많은 신시장 개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신기술 개발 자체가 신시장 개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뤄졌던 수많은 블루오션적 혁신의 예를 보면 기존에 완성돼 있던 기술을 사용하거나, 아예 기술과 관계없는 것들이 상당수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첫 출시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포드의 T형 자동차,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얼핏 신기술의 산물로 보이지만, 그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기술이었다. 기술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가능해진 여러 기능을 취합, 새로운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가치혁신적 발상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대부분 기술 기반 사업에서 요소 기술이 가져가는 기술 로열티보다는 비즈니스 운영 주체가 가져가는 창의적 사업 개발 이익이 더 큰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태양의 서커스, 스타벅스,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은 출시 당시 블루오션적 신시장을 열어 큰 성공을 거뒀지만, 기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신시장 개척을 추구하는 전략은 사업 추구 당사자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이다. 기존 경쟁 전략의 주안점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들보다 우월한 입장에 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회 전체로도 바람직한 일일까. 경쟁의 경우 한 명의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도 있다. 경쟁 전략의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이다. 대부분의 경쟁 전략이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 측면에서 우리나라 안에서의 제로섬 게임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국가 간 경쟁이란 개념도 인류 공영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적절치 못한 생각일 수 있다. 이에 반해 가치혁신 전략은 신시장 개발을 추구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두는 전략이다.

# 경쟁보다는 새시장 개척으로 상생을

신시장 개척을 장려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희생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권장하는 것이 한 예다. 청년 창업은 실업률을 낮추는 정책의 일환으로 장려한다. 그들 중 소수의 성공자가 나와서 출신 학교의 이름을 빛내고, 사회 전체 부의 증진에 일조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도태하는 다수의 젊은이들은 사회적 손실이다.

사업에 실패한 자들에 대한 관용이 적고, 패자 부활의 기회가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에 내재해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 신사업의 실패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론이나 수단 등을 교육·훈련을 통해 창업 지원자들에게 철저히 준비시켜야 한다. 가치혁신 전략은 대안 없는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인 방법론과 여러 가지 유용한 수단을 제공, 실패 확률을 현저히 낮추는 데 일조한다.

이처럼 벤처회사에서 대기업까지 모두에 유용하고, 신기술 유무(有無)를 떠나 적용하고, 개인과 전체에 유익한 ‘블루오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블루오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는 회사들의 변명은 크게 두 가지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과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블루오션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과 수단은 아주 쉽게 제시돼 있지만, 이를 복잡한 비즈니스 케이스에 적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트레이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 기업가 정신 있어야

기업을 일으킨다는 의미의 세울 기(起)자 ‘기업가(起業家) 정신’은 기업을 잘 이끌어 나간다는 의미의 꾀할 기(企)자 ‘기업가(企業家) 정신’과는 의미상 차이가 있지만 발음이 같고, 긍정적인 점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함께 쓰이는 단어다. 이 글에서 강조하는 기업가(起業家) 정신은 큰 가치의 창출을 위해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가진 신사업을 일으키는 정신을 말한다.

이를 위해 흔히들 위험 감수(risk taking)란 면을 강조하지만, 엄밀히 말해 진정한 기업가들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은 위험을 그대로 떠안고 나간다는 의미다. 진정한 기업가는 위험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예측하고 최소화하는 사람이다. 위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거는 사람이라면, 그 위험의 정도가 아무리 작아도 실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기업가 정신은 새 회사를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제품이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은 제품이 세계 정상에 오를 것이다. 이전에는 세계 일류 기업의 뒤를 따라가면 될 일이었는데 정상에 오른 지금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신시장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는 기업은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없고, 이미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 수명이 오래 갈 수 없다. 신제품을 개발해낼 능력도 없고, 보고 배울 앞선 기업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를 일으키려는 사람, 또는 기존 회사에서 신사업을 창조해내야 하는 기업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은 준비 없이 위험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름의 역량 강화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의 필수 요건이다. 블루오션 창출을 위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고,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위해 신시장 개척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치혁신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블루오션과 기업가 정신은 불가분의 관계다.




성광제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경영과학과 교수·전략경영학회 가치혁신연구센터장 kj2inno@gmail.com>

▲서울대 제어계측과 학사·석사 ▲미시간대 전자공학 박사 ▲인시아드 MBA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JSC) 연구원 ▲다국적기업 MOLEX 극동아시아지역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