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부장한테 깨지고 후배에 열받고, 당신만의 '비타민'이 필요하다면…
국내 한 게임업체 기획팀의 A대리는 몇 년 전 팀 회의 도중 한바탕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차세대 게임 기획 문제를 놓고 B과장과 의견차가 벌어졌는데 모든 팀원이 B과장 의견에 동조했다. A대리는 서운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고 하마터면 큰 싸움이 될 뻔했다. ‘왕따를 당한다’는 생각에 회사를 때려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A대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며칠째 입을 닫은 채 지냈고, 이를 보다못한 C부장은 그를 술자리로 불러냈다. 부장은 그 자리에서 며칠 전 자신이 받은 휴대폰 메시지 내용을 보여줬다. “A대리가 기운을 차려야 될 텐데요. 누가 뭐래도 A대리가 우리 부서 에이스 아닙니까.” 당시 언쟁 상대였던 B과장이 C부장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C부장의 답신도 있었다. 꽁해있던 A대리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은 과장이 된 A대리. 가끔씩 회사 일로 사람들과 부딪칠 때마다 당시 선배들이 보여준 애정을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른다.

직장인들은 모두 자신만의 ‘비타민’을 갖고 있다. 부장에게 한바탕 깨진 후 컴퓨터 바탕화면 속의 가족사진이나‘ 소녀시대’ 윤아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하고, 옆 부서 동료와 한바탕 메신저 뒷담화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때로는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비밀 아지트나 나만의 소중한 물건이 ‘충전기’ 역할을 해준다. 고단한 직장생활에서 활력소가 되는 에너지원을 찾아가 본다.

◆주말보다 즐거운 수요일

한 모바일 부품 제조업체의 이모 차장은 곧 마흔이 되지만 출퇴근길 만화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칭기즈 칸의 일대기를 그린 허영만 화백의 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본다. 매일 아침 포털사이트에 8시30분께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출근 지하철 시간대와 딱 맞는다. 그의 스마트폰 즐겨찾기에는 각 포털의 연재 만화 목록 수십여개가 등록돼 있다. 요일별로 업데이트되는 만화를 즐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수요일은 그가 좋아하는 만화들이 가장 많이 올라온다. 남들에게는 가장 힘든 요일이라지만, 그에게 수요일은 토요일보다 더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다.

◆‘우렁각시’ 안마기

올해 45살인 김 부장.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 사내에서 독거노인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집에 가면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우렁 각시’가 있다. 다름아닌 최신식 전신 안마기. 지난달 거금을 들여 마련했는데, 매일 최신 안마기에 몸을 맡겨 피로를 풀다보니 이제는 안마기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저녁에 안마기에서 잠이 들어 아침이 돼서야 일어나는 적도 적잖다. 안마기를 애마처럼 아끼는 김 부장. 팀원들은 이런 김 부장에게 항상 하는 소리가 있다. “부장님~ 그래도 장가 가셔서 가족들에게 받는 안마가 짱이에요~.”

◆퇴근 후엔 로커

식품회사 송 대리의 취미는 노래다. 그 중에서도 터질 듯한 사운드의 하드록을 좋아한다. 다행히 그가 다니는 회사에는 밴드동아리가 있다. 이름은 ‘신나는 밴드’. 송 대리는 퇴근 후 지하 밴드연습실에 내려가면 로커가 된다. 누구나 소리를 한번 크게 지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법. 최근에는 펑키 리듬의 곡을 직접 만들고 있다. 가사에는 같은 팀 직장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를 그대로 담았다. “지쳤어~ 고참 잔소리~ 무시해~ 고참 잔소리!” 이렇게 자신의 한(?)을 담은 곡을 타고난 고음으로 토해내다보면 마음 속 응어리가 확 터지는 느낌이다. 이 노래는 오는 5월 사내 밴드 연주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전직 카레이서 출신의 윤 과장. 그의 에너지원은 역시나 도로 위의 질주다. 입사 5년차 대리 진급에 맞춰 그동안 모은 돈으로 중고 스포츠카 한대를 장만했다. 그의 질주본능이 되살아나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는 퇴근길 도로 위에서 모두 해결한다. 멋지게 회사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면서 창문을 모두 내린다. 지나가는 직원들의 시선도 즐긴다. 하루일과는 싹 잊은 채 윤 과장은 그대로 액셀을 밟는다. 요란한 스포츠카 소리와 질주본능, 그가 몇 년째 이어온 에너지 충전 방식이다.

◆‘별장’에서의 재충전

직장생활 5년차인 전 대리. 그는 회사 바로 옆에 나만의 ‘별장’을 두고 산다. 그가 쉬고 싶을 때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별장’이지만, 사실은 그의 집이다. 전 대리의 집은 회사에서 불과 200m 떨어져 있다. 남들은 출근하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고 하지만, 그는 단 3분 만에 해결된다. 직장 내에서는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 그는 몰래 집과 회사를 오가며 적절히 스트레스를 푼다. 회식한 다음날은 오전에 약국을 간다며 나와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일 때도 있고, 도저히 못 견딜 때는 점심을 거르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집보다 편안한 휴식처가 또 있으랴. 전 대리에게는 집이 바로 ‘오아시스’다.

◆‘여친’이 최고 비타민

대기업 L사에 다니는 박 대리는 직장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옆팀 양 대리를 보면 금세 기분이 풀린다. 박 대리와 양 대리는 만난 지 6개월 된 사내 커플이다. 상사에게 깨져 우울할 때면 양 대리는 항상 ‘오빠 파이팅 ♥♥’ 메신저를 보내주곤 한다. 이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순식간에 의욕이 생기는 박 대리.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여친과 스릴 넘치는 스킨십을 하는 것도 그의 또 다른 비타민이다. “회사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에서 여친과 함께 있을 때만큼 활력소가 있을까요.”

고경봉/윤성민/강경민/강영연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