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일명 ‘물뽕(물에 타 먹는 필로폰)’으로 불리는 신종 마약 감마하이드록시뷰티린산(GHB)을 판매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 실시간 상담게시판에 “물뽕을 사려고 하는데 상담을 받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1분도 안 돼 답글이 올라왔다.

운영자 A씨는 “GHB는 20㎖ 병에 담겨 있고 한 번에 세 방울씩 술이나 음료에 타서 마시면 된다”며 “3~6방울 정도 휴대용 병에 넣어 들고 다니다가 ‘작업’ 중인 여성의 음료수에 타서 먹이면 10분 안에 효과가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물뽕 20㎖(10회분)를 50만원에 팔고 있었다. A씨는 “고속버스 화물칸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2시간 만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며 “GHB 외에 ‘도리도리’ ‘작대기’라 불리는 엑스터시 필로폰도 50만~90만원에 판매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체내에서 쉽게 배출되고 기억상실 구토 등 부작용이 덜한 GHB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암약하는 ‘검은 정보’는 비단 마약류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제 총·폭탄을 만들고 구입하는 방법도 ‘친절하게’ 떠돈다.

정부는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과 제휴해 관련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유해 정보를 100%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뽕 구매사이트’ ‘GHB 팝니다’ ‘사제폭탄 제조법’ 등 게시글이 버젓이 나도는데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50만원에 거래되는 ‘물뽕’…제조법까지 나돌아

GHB는 투약자와 구매자 모두 마약사범으로 형사처벌받지만 구매 희망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 밀수입하거나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달 15일 GHB를 제조·투약한 혐의로 안모씨(30)를 구속했다.

안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구글에서 GHB 제조법을 보고 감마부티로락톤(GBL) 등 원료 물질을 구입, 석 달에 걸쳐 GHB를 직접 만들었다. 오·폐수처리설비업체 직원인 안씨는 거래처를 통해 회사 물품 명목으로 GBL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자신의 집과 회사 창고 등에 설비를 갖추고 회사 사업자등록증을 도용, 회사 물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꾸며 GBL을 사들였다. 안씨가 제조한 GHB 842g은 시가 14억원어치로 2만8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같은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GHB를 사려 한 혐의로 김모씨(26) 등 28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대부분 20~30대였지만 고교생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줬다.

사제 마약 제조·구입법은 국내 포털사이트는 물론 단속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구글 야후 등 외국 포털사이트에 더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대부분 “GBL에 수산화나트륨 또는 수산화칼륨 적당량을 섞어 가열하면 GHB를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방식을 알려준다. GBL은 현재 향정신성의약품의 원료 물질로 지정돼 일반인은 구매할 수 없다. 경찰 관계자는 “GBL은 일반인이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주원료 삼아 만든 GHB 또한 불법 물질”이라면서도 “인터넷에 올라온 제조법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라고 우려했다.

◆‘연쇄 테러사건’ 폭탄 원료, 서울 도심에서 거래

서울 보문동에서는 지난 1월 처형 집 앞에서 직접 만든 폭탄 2개를 터뜨린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박모씨(43)는 “별거 중인 아내의 행방을 알아내라”며 처형 집 앞에 20㎝ 원통형 폭죽에 엽총 탄환에서 빼낸 탄약을 넣어 만든 폭탄을 던졌다. 건물 유리창 10장이 산산조각날 정도의 위력이었다. 서울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박씨가 만든 폭탄은 모양이 조잡하긴 했지만 온전한 폭탄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안씨처럼 박씨도 인터넷을 통해 배운 ‘지식’으로 사제폭탄을 제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형법상 폭발물 제조 관련 게시물을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는 ‘폭발물 사용 선동죄’로 처벌되지만 사제 폭탄 제조법을 담은 글은 인터넷에 끊임없이 올라온다. 환경부는 9일 사제 폭탄 제조 과정을 담은 동영상 등 불법·유해 정보 27건을 찾아내 삭제했다.

국내 포털사이트는 최소한의 제재가 가능하지만 경찰의 단속 권한이 없는 구글 야후 유튜브 등 외국 인터넷 사이트는 사실상 치외법권이다. 질산칼륨 염소산칼륨 질산암모늄 황산 등으로 사제 폭탄을 만드는 방법이 버젓이 게시돼 있다.

이 가운데 비료로 쓰이는 질산암모늄은 휘발유나 밀가루 등과 섞어 열을 가하면 폭발적인 연소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제폭탄의 주된 원료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에도 질산암모늄이 들어간 폭탄이 사용됐다.

질산암모늄 등 인터넷에 소개된 폭탄 원료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서울 을지로4가의 B화공약품 판매점에 전화해 “질산암모늄을 살 수 있느냐”고 묻자 “500㎖ 한 병에 1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5㎏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점원은 “우편으로 물품을 배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폭탄 원료인 염소산칼륨과 과산화수소수는 500g당 7000~1만원에 유통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질산암모늄 등 69종의 유해 화학물질을 판매할 때 구매자의 신원과 용도 확인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내년 2월부터 시행하기로 하긴 했다. 그러나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화공약품 판매상들 사이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C화공약품 판매점 주인은 “가짜 신분과 구입 목적을 적고 사가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데다 수년간 판매한 물건을 신분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안 팔 수도 없다”고 말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불법·유해 사이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마약류 거래, 도박, 장기매매 등 범죄에 이르는 정보를 유통하다 적발된 사례는 2009년 9607건에서 지난해 3만8109건으로 4배가량 늘었다. 특히 2008년 5건에 불과하던 불법 마약류 거래 사이트는 2009년 28건, 2010년 194건으로 3년 새 40배 넘게 늘어났다.

이들 사이트는 방통심의위가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청 등과 공조해 불법·유해 사이트로 등록, 차단된 뒤에도 주소를 약간만 바꾸거나 해외 서버에 만든 새로운 사이트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마약 거래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마약사범은 2007년 60명에서 2009년 605명으로 3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방통심의위는 감시 인력 부족을 이유로 단속은커녕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불법 정보를 유통하는 반사회적 사이트가 최소 10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이를 모니터링하는 인원은 3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경찰이 먼저 적발해 사이트 차단을 요청해 올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터넷에 범람하는 불법·유해 사이트는 접속과 검색을 제한해도 ‘화학 실험(폭탄 제조)’ ‘단순한 만남(원조교제)’처럼 검색어를 교묘하게 바꾸는 수법으로 감시망을 피해가기 때문에 당국의 단속만으로는 뿌리뽑기 힘들다”며 “네티즌의 자발적인 감시와 신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